지팡이의 고백
GT 소설가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세상풍파를 겪어온 마른 막대기입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 무릎뼈가 튀어나오고 허리가 조금은 휘었지만 그래도 보기보다 무척 단단하답니다. 아무리 내동댕이쳐도 끄떡없지요.
예전에는 비바람이 두려웠답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저는 더 이상 흔들림 없이 이렇게 굳건히 서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가뭄도 그렇군요. 전에는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뼛속까지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꼈었는데 이젠 사막 한가운데 내던져도 두렵지 않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자랑스러운 건 제 주인은 저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지 않으려고 하신다는 거죠. 그만큼 저를 믿고 신뢰한다는 의미겠지요.
지금껏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지금처럼 가슴 뿌듯한 적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증 흠모하던 그분의 손에 쥐어졌으니까요.
이제 지난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낮의 꿈이었거니 생각하죠. 철없던 시절의 몽상이랄까……. 왜 그런지 그때는 여느 나무들처럼 높이 솟구치고만 싶었어요. 높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과 초조함도 한 몫 했구요.
그러던 어느 날 가장 높은 곳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쳤고, 먼저는 내 자신이 예전에 가졌던 화려함이 하나하나 벗어지더라구요. 뿐만 아니라 내가 땅바닥에 떨어지자 어느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지요.
그때 나는 알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늘 높이 솟구치려고 몸부림친다는 것을.
그래요. 내 예감이 맞았어요. 높이 있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나의 불안함이 맞았던 거예요.
“많이 힘들었겠군요?”
그래요.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어요. 떨어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왜냐하면 떨어짐은 끝이 아닌 기회이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참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인 거죠.
“어떻게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지요?”
기다림이에요.
“기다림이라구요?”
그래요. 떨어진 뒤에 곧장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진 않아요. 어찌 보면 지금껏 살아왔던 시간들보다도 더 고독한 순간들을 비바람 속에 보내야 해요. 그 순간이 더 힘든 건 전에는 함께 그 비바람을 맞을 이가 있었지만 지금을 철저하게 혼자라는 겁니다. 벗겨진 몸둥아리는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바람에 이리저리 끌려 다녀야 하죠.
“언제 그 고통의 시간이 끝이 나는 겁니까?”
고통은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채워져야 하는 거죠. 과거에 높아지려고만 하던 욕망과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헛된 소망이 사라지고 내 안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 마름 막대기가 되는 순간까지 그 시간을 채워야 해요. 그때 비로소 주인의 손에 쓰임 받는 지팡이가 되는 거죠.
“그래, 지금은 행복하십니까?”
물론이죠. 주인의 손에 쓰임 받는 다는 것은 가장 큰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그분이 나를 의지해서 평생을 동행한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전에는 빈 마음으로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불안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알아요.
“떨어짐은 끝이 아니라 참된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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