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서신' 김영환
GT 남과북  


[198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적 인물… '강철서신' 김영환]

"우리는 김정은 믿지 못하지만 그가 헛소리한 적 없다
'핵·경제 병진 노선' 등 발표한 것을 나름대로 지켜왔다
집권 내내 北 경제 개혁에 집중… 변경과 후퇴 없었다"



김영환(55)씨는 1980년대 학생운동 흐름을 '주사파(主思派·김일성주의)'로 돌려놓은 인물이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북한 단파(短波) 방송 내용을 그대로 베껴 유포한 그의 '강철서신'은 여러 지하운동 서클의 지도 지침이 됐을 정도로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당시 그는 국보법 위반으로 2년간 수감됐다.

1991년에는 강화도에서 북한의 반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그는 김일성까지 접견할 수 있었다. 북한 정권에서 그의 위상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큰 기대를 갖고 만났던 김일성에게서 사상적으로 취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몹시 실망했다.

그때부터 그의 회의와 갈등이 시작됐다고 한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결성된 '민주민족혁명당(민혁당)'을 그가 자진 해산하는 결정을 내렸다(뒷날 이석기를 주축으로 한 잔류파가 통합진보당을 만듦). 이런 민혁당의 실체가 바깥으로 드러난 것은 1998년 남파 간첩을 태운 함정이 우리 해군에 피격됐을 때 그 안에서 발견된 암호문 때문이었다.

뒤늦게 그는 다시 구속됐다. 그는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며 '전향서'를 썼다. 그 뒤로 그는 북한 정권 타도를 위한 북한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중국에 아지트를 만들고 활동가들을 교육시켜 북한 내부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6년 전 그는 중국에서 체포돼 고문을 받고 풀려났다. 이런 그는 '판문점 정상회담'으로 갑자기 한여름이 온 것 같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영환씨는 “조국 민정수석은 법대 동기로 운동권 축에 못 끼였고 교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이나 이복형 김정남 등을 잔인하게 죽인 3대 세습 독재자였지만, 이제는 우리 국민에게 친근하고 유머 있는 지도자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김정은이 국면 전환을 위해 오랫동안 언행과 연출을 준비했구나 싶었다."

―위장 평화쇼와 실질적인 변화, 어느 쪽으로 보는가?

"작년에 '마지막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김정은 위원장이 농업 발전을 위한 투자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가 나왔을 때, 나는 북한이 조만간 국면을 전환할 것으로 봤다. 내 예상대로였다."

―김정은에게 진정성이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김정은을 믿지 못하지만, 그가 헛소리를 한 적은 없다. '핵·경제 병진(竝進) 노선' 등 자신이 발표한 것은 나름대로 지켜왔다. 그는 집권 6년 반 동안 북한의 경제 개혁에 집중했다. 노선의 변경과 후퇴가 없었다. 북한은 2012년 6·28 조치에서 '포전담당제'를 도입했다. 집단 농장을 사실상 한 농가 단위로 맡기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도 이런 농업 개혁의 진정성을 믿지 못했지만, 2년 뒤 북한의 여러 지역을 조사해보니 대부분 완료돼 있었다."

―그런 농업 개혁만으로 판단 잣대가 될 수 있나?

"대학 시절 중국이 개혁·개방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내부를 보도하는 외신들은 '인민공사(人民公社·대규모 집단농장)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농업 개혁의 안정적인 진행 여부가 중요한 지표였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소기업과 자영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변화 조짐을 읽을 수 있었다. 2010년 북한에는 합법적인 종합 시장이 200개였는데, 작년에는 468개였다.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억압과 통제의 움직임이 없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도 '김정일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며 지금처럼 기대가 높았지만.

"김정일도 농업 개혁정책을 폈지만 6개월 만에 개혁에 앞장서는 사람들을 반동으로 몰아쳤다. 시장 개혁도 1~2년 단위로 풀어줬다가 조이곤 했다. 반면 김정은 시기에는 억압 조치로 이해될 만한 정부 발표나 행정 조치, 간부들 움직임이 없었다. 작년 봄 평양의 여명 거리에는 빌딩 40여개가 들어섰다. 민간 자본으로 건설됐다고 한다. 국가와 자본 사이에 얼마간 신뢰 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의 말을 모두 '위장 쇼'라고 하면 현실 변화를 잘못 읽을 수 있다. 그의 선언대로 핵 무력이 완성됐으므로 이제 경제에 집중할 시점이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관건은 핵(核)이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다고 보나?

"그런 의사가 없으면 아예 트럼프를 안 만나는 게 낫다. 김정은이 완전히 바보가 아닌 이상 안다. 미국과의 회담을 안 하겠다면 몰라도 회담을 하면서 말을 바꾸진 않을 것이다. 비핵화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상당 부분 이미 약속했다고 본다."

―북한 정권의 속성상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갖고 남한과의 경쟁에서 유일하게 우위를 점하게 해준 것인데 과연 그럴까?

"북한 입장에서 보면 비핵화는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는 북한의 핵 시설과 핵 물질은 물론이고 기존의 핵무기까지 완전한 제거에 있는데?

"북한은 그전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핵 사찰·검증에 협조할 것으로 본다. 그 대상과 범위에서만 핵 폐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통제된 북한 체제에서는 핵무기를 충분히 감출 수 있다. 이 때문에 완벽한 비핵화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핵 폐기까지 가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그렇게 이행했다 해도 국제 사회에 핵을 숨겨놓은 것처럼 행세할 것으로 보인다. 그게 북한 정권의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이니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데다 과시욕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지 않고 '성공'으로 포장되길 원할 것이다. 공동 선언만 '비핵화 합의'로 하고, 구체적인 실행 부문에서는 양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북핵은 그대로 남아 있고 대북 제재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만 낳게 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미국의 그런 태도에 한·미 동맹을 중요하게 여겨온 보수 진영은 더욱 고립될 것이다. 미·북 회담의 결과를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보수 진영이 원하는 걸 만족 못 시키는 협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트럼프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고, 크게 양보할 것 같지 않다."



―북한 정권에 대한 동조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우리 내부의 이념적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북한에 의한 '적화(赤化)'를 걱정하는 보수 인사들도 적지 않다.

"1998년 민혁당 사건 이후 검거된 남파 간첩이 20여명 된다. 이들은 암살이나 탈북자 정보 파악 임무를 수행했지, 과거처럼 요인과 운동권 포섭, 지하당 구축 같은 남조선 적화 임무는 없었다. 물론 '일심회'나 '왕재산' 같은 간첩 조직이 적발됐지만 이는 1990년대 만들어진 조직을 관리하는 차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남한의 적화는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사실 북한은 그런 능력이 없고, 많은 예산을 써왔지만 성과도 없었다."

―우리 사회가 북한의 교란 선동 전술에 취약하다고 보지 않나?

"보수 입장에서는 친북 성향의 가치관이 확산됐다고 보지만, 북한의 공작 임무를 책임지는 입장이라면 오히려 남한 체제가 강고해졌다고 느낄 것이다. 한국의 발전된 경제 수준, 자유민주주의, 높은 품위는 매력이 되지만, 북한은 내세울 만한 매력이 없다. 주체사상을 내세우지도 못한다. 주체사상 연구에 더 이상 지원하지 않고 진전도 없다."

―김정은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관심을 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은 공산당 집단지도 체제가 아닌 일인 독재이고 신정(神政) 체제다. 이런 권력 체제에서는 개혁·개방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는 순간 그 체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2002년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표현을 쓰고, 신의주 특구 설치 등 개혁·개방 조치를 지시했다. 하지만 외부 정보가 들어가 체제 위기가 생기면 망하는 길이라고 봤던 것 같다. 그래서 원상으로 되돌아갔다. 김정은은 외부 정보와 인적 교류를 통제하는 선에서 제한된 경제 개방을 할 것으로 본다."

―지금의 체제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반드시 위기가 올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은 사상 통제와 학습 동원 등 조직화가 잘돼 있는 전근대적 체제다. 외부 세계가 변하고 있는데도 과거 시스템으로 고립된 채 적응해왔다. 배급제도나 국영기업 운영 등에서 형편없이 망가진 상태로도 굴러갔다. 북한 체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거라는 전망은 오래 축적된 장악력과 조직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2000년대 초 나는 북한에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담은 CDUSB를 많이 들여보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접하고도 주민들은 체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보수 일각에서 북한의 변화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는 현 정권에 대한 불신, 구체적으로 청와대 내 운동권 출신과 북한 정권 사이에 어떤 밀약이 있을 거라는 불신도 작용하고 있다.

"보수 정권 시절 회담이 이뤄졌으면 이런 불신이 덜어졌을 것이다. 청와대 내 운동권 출신 중에는 '주사파' 핵심은 거의 없다고 본다. 체계적으로 이념화된 사람들도 아니라고 본다. 또 많은 세월이 흘렸고…."

―청와대 운동권 참모들과 교유는 있나?

"옛날에 관계가 모두 끊어졌다. 나를 '배신자'라고 하니까. 조국 민정수석은 서울대 법대 동기(나경원·원희룡도 같은 학번)이지만 별로 교류가 없었다. 그는 PD(민중민주주의) 계열이었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운동권이랄 것도 없었다."

―남북 화해 이슈가 이렇게 크게 굴러가면 보수 정당이 굉장히 어렵게 될 것이다.

"시일이 지나면 남북 이슈가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에서 경제가 몹시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를 빼고는 다 어렵다. 노동·공공·금융개혁에는 전혀 손을 안 댄다. 지금처럼 세금으로 일시적 봉합만 해놓으면 장기적으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cong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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