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얻는 세 가지 방법-훔치든가 얻든가 벌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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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얻는 세 가지 방법-훔치든가 얻든가 벌든가

엄상익(변호사)                               

                                                                                                                 
   ​삼십사년 전 변호사를 처음 개업하고 몇 달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삼십대 초반의 병아리 변호사였다.
사건마다 돈을 얼마를 받는 게 적정한지 몰랐다. 주위에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그는 검사가 회사의 경리부장인 자신에 대한 은밀한 내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 검사는 군에서 같은 법무장교로 근무하면서 안면이 있던 사람이었다. 의뢰인은 내게 수임료가 얼마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다가 오백만 원을 불렀다. 그 이년 전 대위 시절 월급이 오십만 원 가량이었다. 그 열 배를 부른 것이다.
그는 바로 그 금액을 내게 지급했다. 이틀 후 경리부장이라는 그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그 금액으로는 안될 것 같네요. 돈을 더 가져왔습니다. 받으시죠.”
  
  그는 봉투 하나를 내게 더 주고 돌아갔다. 그가 간 후 봉투를 열어보니까 오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이 더 들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다. 나는 담당 검사에게 가서 그에 대한 내사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사건을 맡아 변론을 하려고 한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내일 그 경리부장과 같이 검사실로 오세요.”
  
  다음날 나는 의뢰인인 경리부장과 함께 담당 검사의 방에 들어갔다. 담당 검사가 약간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경리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말이야, 철저히 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여기 계시는 이 변호사 때문에 봐주는 거야. 확실히 알아둬.”
  
  검사는 논공행상의 마무리까지 해 주었다.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가던 나는 그 돈으로 처음으로 내 차를 샀다.
변호사로서는 횡재지만 그게 과연 돈을 번 것인가 의문이었다.
  
  또다른 횡재의 기회가 나타났다. 재벌가의 아들들이 모여 포커판을 벌이다가 잡혀서 구속이 되고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그중에 고교동창 한 명이 있었다. 경찰서 유치장으로 면회를 가서 사건을 맡았다. 담당 검사는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부탁을 했다. 그는 그날 저녁으로 동창을 석방시켜 주었다. 며칠 후 동창이 나를 중국음식점으로 불러 저녁을 샀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 정도면 큰 사건인데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창은 사흘 후에 갚겠다면서 내게 오히려 돈을 꾸어가고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에게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제일 먼저 정립해야 할 건 돈에 대한 철학이었다. 카알라일은 돈을 얻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훔치든가 얻든가 벌든가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도둑도 있지만 정치인이 권력을 배경으로 돈을 뜯는 것도 절도행위였다.
사회사업을 포장으로 거저 돈을 얻으려는 앵벌이들도 있다. 카알라일은 이마에 땀을 흘리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라는 것이 있었다. 감옥에 있던 사람이 풀려나오면 거액을 받는다는 조건부 약속이었다.
도박 같은 우연성이 끼인 돈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돈뭉치에 대한 탐욕으로 변호사들은 칼자루를 잡은 판사들의 영혼 없는
노예가 됐다. 판사들은 찾아와 아양을 떠는 변호사들을 보면서 ‘너희들은 내 덕에 사는 거야’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다.
아무런 땀도 흘리지 않는 변호사들은 커다란 과실만 따먹으려고 하기도 했다. 그건 땀 흘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돈을
훔치거나 거저 얻으려는 행위로 보였다.
  
  그 반대도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구치소에 가서 구속된 의뢰인과 얘기를 나누며 그의 고통에 공감했다.
수천 쪽의 사건기록을 몇 날 며칠 밤을 새면서 분석하고 판례들을 찾았다. 몇 개의 논문 분량의 변론서들을 쓰면서 몸이 파김치가
되기도 했다. 몇 달간 수십 회 밤까지 진행되는 법정에서 증인을 신문하고 마지막 최후변론까지 정열을 기울였다.
그게 변호사가 하는 노동의 영역이었다.
  
  판결은 판사의 재량이고 권한이었다. 그렇게 노력해도 중한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있었다. 죄를 지으면 처벌되어야 하는
당연한 원칙일 수 있었다. 그런 때 의뢰인이나 그 가족이 “당신이 한 일이 뭐 있어?” 하면서 사무실을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준 돈을 모두 빼앗아가기도 했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변호사란 무엇인지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동안 땀 흘렸던 노동이 무엇이고 그 대가를 왜 빼앗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뜨개질 품팔이로 나를 키웠다. 나는 헌 실에 초를 먹여 깡통에 감고 어머니는 수동 편물기에 그 실을 걸어 옷을 짰다.
그리고 품삯을 받았다. 어머니는 손님이 가져온 실을 조금도 빼돌리지 않았다. 적당히 모두 그런 짓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대신 어머니는 품값을 떼먹으려고 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았다.
  
  나는 뜨개질 대신 지식노동자로 살기로 결심했다. 땀 흘려 일한 이상의 보수는 악마의 낚시미끼라고 생각했다.
오십대 초 어느 날 재벌그룹 회장이 사건을 맡기고 수임료를 흥정하는 순간이었다.
  
  “돈은 나한테 맡겨 줘, 우리 그룹에서 섭섭지 않게 줄 테니까 말이야.”
  그는 큰 돈을 줄 것을 넌지시 암시했다.
  
  “아니요, 그렇게 하면 내가 일할 때 당당하지 못하게 돼. 내가 흘린 땀만큼 그리고 노동을 한 만큼 청구할 테니까
그걸 정확하게 계산해서 줘.”  내가 받은 돈은 나의 정직과 성실 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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