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간첩(日本間諜)의 조선정탐록(朝鮮偵探錄)
AD 함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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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日本人)들에게 '조선(朝鮮)의 이미지'를 심어준 책(冊))

 

1893년(年)일본(日本)공무원(公務員)혼마 규스케(本間九介)는
조선(朝鮮)땅에 파견(派遣)되어 전국(全國)을 돌면서 이곳저곳을

정탐(偵探)하게 되는데 그 내용(內容)을 모아 1894년(年)에 신문(新聞)에

연재(連載)하고 다시 한권의 책(冊)으로 묶어서 간행(刊行)했으니,

그것이 바로'조선(朝鮮)잡기'라는 책(冊)이었다.

 

책(冊)내용(內容)을 보면

당시(當時)조선(朝鮮)의 무능(無能)함+낙후(落後)함+불결
(不潔)함+부패(腐敗)한 모습(模襲)이
적나라(赤裸裸)하게 묘사(描寫)되어 있는데
사료적(史料的)인 가치(價値)는 상당(相當)한 책(冊)으로
인정(認定)받고 있다.
특(特)히 이 책 내용(內容)이 향후(向後)일본인(日本人)들에게
조선(朝鮮)에 대한 고정(固定)된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지대(地帶)한 공헌(貢獻)을 하게 된다고 한다.(그러니 알면
유용(有用)하다)몇 가지 인상(印象)깊은 내용(內容)을 뽑아봤다.


조선(朝鮮)은 어떤 나라인가?


01. 언어(言語)와 문장(文章)


언어(言語)는 전국(全國)모두가 같다.
다만 지역(地域)에 따라 억양(抑揚)과 사투리의 차이(差異)가 있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일본(日本)과 비교(比較)하면
사투리의 지역(地域)차이는 심(甚)하지 않다.
가령 함경도(咸鏡道)사람과 전라도(全羅道)사람이 상봉(相逢)
하더라도 가고시마 일본(日本) 남부(南部)와 이와테 일본(日本)
북부(北部)사람이 상봉(相逢)하는 것처럼 기이(奇異)한 상황(狀況)
은 발생(發生)하지 않는다.


02. 한글의 교묘(巧妙)함


'언문(諺文)'이란 곧 조선(朝鮮)문자(文字)를 말한다.
교묘(巧妙)한 것은 서양(西洋)의 알파벳을 능가(凌駕)한다.
조선인(朝鮮人)들은 실로 이와 같이 교묘(巧妙)한 문자(文字)를
가지고, 왜 고생스럽게 일상(日常)의 서간문(書簡文)에까지
어려운 한문(漢文)을 사용(使用)하는지 의문(疑問)이다.
이와 같이 교묘(巧妙)한 문자(文字)도
겨우 중(中)하층(下層)사회(社會)에서나 사용(使用)될 뿐이다.


03. 가야(伽倻)라는 국호(國號)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수로왕(首露王)이 도읍(都邑)한 땅으로
국호(國號)를 '가락(駕洛)'이라고 부르고,
대(大)가야(伽倻), 소가야(小伽倻), 고령가야(高靈伽倻)등의
5가야(伽倻)를 지배(支配)했었다.
바다를 낀 이 지역(地域)은 일본(日本)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진구 황후(皇后)가 삼한(三韓)을 정벌(征伐)하기 위(爲)해 보낸
군대(軍隊)는 틀림없이 여기에 상륙(上陸)했을 것이다.
가락(駕洛)은 곧 '가라(伽羅)'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外國)을 가리켜 '가라(伽羅)'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여기서 기원(起源)했을 것이다.


04. 독립(獨立)한 적(的)이 드물다.


일본(日本)사람들은 흔히
조선(朝鮮)은 지금(只今)비록 쇠미(衰微)해지기는 했지만
4천년(千年)의 오랜 역사(歷史)를 지닌 국가(國家)로서 경외(敬畏)시
한다.
하지만 실상(實狀)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문물(文物), 제도(制度), 기계(機械), 공예(工藝)하나같이
사람의 시선(視線)을 끌만한 것이 없다.
거의 아프리카 오지(奧地) 탐험(探險)을 연상(聯想)시키게 한다.
조선(朝鮮) 역사(歷史)를 탐독(耽讀)해봐도 그렇다.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지금(只今)까지
줄곧 다른 나라에 속박(束縛)되고
상대(相對)하지 않았던 시절(時節)이 드물다.
진정(眞正)으로 독립(獨立)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疑問)이다.

05. 대(大)· 중(中)· 소화(小化) 사상(思想)


조선(朝鮮)의 선비는 중국(中國)을 항상(恒常) '중화(中華)'라고
말하고 스스로는 '소화(小華)'라고 부른다.
그런 조선(朝鮮) 사람들은 나에게도 묻는다.
조선인(朝鮮人) "일본(日本)은 어떻게 부르는지?"
혼마 "대화(對話)" 이렇게 말하면 곧 나를 꾸짖는다.
조선인(朝鮮人) "이런 오만방자(傲慢放恣)한 지고"
하지만 오만(傲慢)하여 자랑하는 것과
비루(鄙陋)하여 주눅 든 것 중에 어느 것이 나은가?
그들은 이렇게 박식(博識)한 척 하면서 설명(說明)한다.
조선인(朝鮮人) "중국(中國)을 중화(中華)라고 칭(稱)하는 것은
대중소(大中小)의 뜻이 아니라,
가운데 위치(位置)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임."
그렇게 책망(責望)하면 나도 한마디 한다.
혼마 "그렇다면 조선(朝鮮)은 왜 소화(小華)를 칭(稱)하는가?"
그러면 조선(朝鮮)사람들은 아무도 말을 못한다.

06. 기후(氣候)


조선(朝鮮)은 일본(日本)과 위도(緯度)가 같다.
그러나 강수량(降水量)은 대개 일본(日本)보다는 적다.
그리고 무척이나 춥다.
전라도(全羅道)와 경상도(慶尙道)지역(地域)은
일본(日本)과 비슷한 기후(氣候)를 느낄 수 있지만
충청도(忠淸道)위쪽으로 가면 기후(氣候)가 변(變)하여
급격(急擊)히 추위를 느끼게 된다.
겨울이면 서울은 도로(道路)가 얼어서
봄에 얼음이 풀리는 때에
가옥(家屋)이 경사(傾斜)지는 경우(境遇)도 매우 많다.

조선인(朝鮮人)들의 기질(氣質)


07. 무사태평(無事泰平) : 느려터진 사회(社會)


일본(日本)의 목수(木手)라면 반나절 걸려서 할 수 있는 일은
조선(朝鮮)의 목수(木手)는 3,4일 걸리는 것이 보통(普通)이다.
시간(時間)에 쫓기는 바쁜 삶이 없기 때문이다.
느리게 살아가는 것은 책망(責望)할 일은 아니지만,
외국인(外國人)들이 보기에
분명(分明) 화(禍)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08. 매운 음식(飮食)


조선(朝鮮)사람들은 매운 것을 좋아한다.
생선(生鮮)국, 된장국 등(等)을 조리(調理)하는데,
모두 고추 혹은 고춧가루를 넣는다.
어린 아이들은 생강(生薑)혹은 무를 씹어,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데
마치 일본(日本)아이가 사탕(砂糖)을 먹는 것과 같았다.
타고난 취향(趣向)이라고 해도
자못 기이(奇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09. 싸움


조선(朝鮮)사람들은 작은 일로 싸움을 시작(始作)하면
서로 마음이 격앙(激昻)되어
입에 거품을 물고 설전(舌戰)하는 것도 잠시(暫時),
서로 갓을 벗고 상투(上頭)를 잡아 댕기며
한바탕 육박전(肉薄戰)을 치른다.
하지만 크게 치고 박고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은 언제나 옷이 찢어지고
그러면 옷값을 물어내라고 하는 수순(隨順)이다.


10. 담배 사랑


조선(朝鮮)사람들은 담배를 매우 좋아한다.
3척(尺)(90cm)이나 되는 담뱃대를
걸어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앉아서 누워서, 일을 쉬거나
침묵(沈黙)하는 사이에도 손에서 놓는 일이 없다.
심지어(甚至於) 목욕탕(沐浴湯)에서도 그런다. 일본인(日本人)
거류지(居留地)에 목욕(沐浴)하러 오는
조선인(朝鮮人)들이 있는데 이들은 탕(湯)안에 들어가서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신분제(身分制)사회(社會)


11. 예의(禮儀)가 바른 나라?


조선(朝鮮)과 같이 계급사회(階級社會)의 나라에서는
언어(言語) 행동(行動)에도 자연(自然)히 계급(階級)이 있다.
예(豫)를 들면 '오라'라는 말에도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의 사용법(使用法)이 있다.
이리 오너라 :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
이리 오시요 : 같은 무리에게 하는 말
이리 오십시요 : 높은 사람에게 하는 말
이런 계급(階級) 사회(社會)의 모습(模襲)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상민(常民)들은 양반(兩班)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고
앉으라는 명을 받지 못하면 앉을 수도 없고
도로변(道路邊)에서 이름 모를 양반(兩班)이라도 걸어가면
담배를 뒤로 감추고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일본(日本)사람들은, 조선(朝鮮)을 흔히 예의(禮儀)의 나라라고
하지만 실은 계급(階級)의 나라였다.

12. 노예제도(奴隸制度) : 노비(奴婢)


조선(朝鮮)의 사정(事情)을 깊이 조사(調査)할 때
실(實)로 놀랄만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조선(朝鮮)의
노예제도(奴隸制度)다. 조선(朝鮮)에서는 양반(兩班)이라면
모두 '노비(奴婢)'라는 노예(奴隸)를 데리고 있었다.
이들은 봉급(俸給)을 받고 노예(奴隸)가 된 것이 아니다.
대부분(大部分)은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서 노예(奴隸)가 된
경우(境遇)다.
그렇게 노비(奴婢)가 되면
자자손손(子子孫孫) 영구(永久)히 주인(主人)집의 노예(奴隸)가
되어야 하고, 평생(平生)을 가축(家畜)처럼 시키는 일만을 해야
했다.
이들은 평생(平生)주 인(主人)에게 묶인 신세(身世)가 되고
장가(杖家)를 가도, 자식(子息)을 결혼(結婚)시켜도
자기(自己) 의사(意思)대로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하거나, 쉬거나, 말하거나 하는 일까지도
자유(自由)로이 할 수가 없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밥을 계속(繼續)해서 먹을 수도 없다.
추워도 옷을 껴입을 수가 없다.
만사(萬事)를 주인(主人)의 명령(命令)을 따라야만 했다.


13. 양반(兩班)


양반(兩班)이 소일(消日)하는 모양(模樣)은 실(實)로 한가(閑暇)해
보인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만 담뱃대를 물고 방에 누워 있을 뿐이다.
그래도 재산가(財産家)의 대부분(大部分)은 양반(兩班)들이다.
재산가(財産家)들은 대개 관리(官吏)가 되어
서민(庶民)들로부터 강압적(强壓的)으로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조선(朝鮮) 속담(俗談)에는,
관리(官吏)가 되면 3대(代)가 앉아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관리(官吏)중에서 가장 큰 부(富)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지방관(地方官) 수령(首領)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관료(官僚)가 된
자(者)들은 지방관(地方官)이 되기를 간절(懇切)히 바란다고 한다.

14. 양반(兩班)여자(女子)들의 진찰(診察)


조선(朝鮮)에서는 양반가(兩班家) 부인(婦人)이 병(病)에 걸려
진찰(診察)을 받는다 해도
얼굴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얼굴을 뒤집어쓰고 손을 내밀어 겨우 진맥(診脈)을 보게 한다.


부패(腐敗)한 관료(官僚)와 행정(行政)시스템


15. 관리(官吏)


양반(兩班)은 과거(科擧)를 통과(通過)하면
어떠한 관직(官職)도 살 수 있는 것이 조선(朝鮮)의 제도(制度)이다.
하지만 관직(官職) 자(者)들은
대부분(大部分) 어리석고 몽매(夢寐)한 자(者)가 많았는데,
지방관(地方官) 수령(首領)들과 필담(筆談)을 통해 대화(對話)를
나눠보면, 고루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은 둘째 치고
이들은 제대로 한자(漢字)도 몰랐다.
사실(事實) 조선(朝鮮)의 과거(科擧) 시험장(試驗場)은
공공(公共)연한 뇌물(賂物) 수뢰(受賂)의 장소(場所)였으니,
가령 급제(及第)해도 뇌물(賂物)을 쓰지 않으면 관직(官職)에
임명(任命)되지 못했다.

16. 지방관(地方官)


지방관(地方官)의 임기(任期)는 3년(年)을 만기(滿期)로 삼지만
재임(在任)을 원(願)하면 정부(政府)에 돈을 내고 관직(官職)을
사기도 한다. 이때 수령(首領) 군수(郡守) 은 3천(千)냥
정도(程度) 관찰사(觀察使) 도지사(道知事)는 1만(萬)냥의 돈이
필요(必要)했다.

17. 관리(官吏)는 모두 도적(盜賊)


조선(朝鮮)의 관리(官吏)는 마음대로 백성(百姓)의 재화(財貨)를
빼앗는데, 그 정도(程度)가 도둑보다 더 할 정도(程度)다.

18. 무관(武官)


무관(武官)들은 단지 그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병법서(兵法書)를
읽지도 못한다. 무예(武藝)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작자(作者)들이
정부(政府)에 돈을 내고 임용(任用)을 받는 것이다.
이들은 첨사(僉使), 수사, 병사(兵士),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등으로
불리지만 훌륭한 관직명(官職名)만 있을 뿐
전혀 군인(軍人)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리들이다.

19. 병사(兵士)


조선(朝鮮)의 병사(兵士)들은 무뢰한(無賴漢)을 모아
봉급(俸給)을 주고 흑색(黑色)의 목면(木棉)옷을 입게 한 것이다.
이들 무뢰배(無賴輩)는 품삯을 목적(目的)으로 병사(兵士)가 된
것이다. 본래(本來) 국가(國家)를 지키려는 뜻은 전혀 없다.
게다가 병사(兵士)는 조선(朝鮮) 사회(社會)에서 지위(地位)가 낮은
자(者)들이다. 만약(萬若) 전쟁(戰爭)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質問)에 그들은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병졸(兵卒) "전쟁(戰爭)나면? 얼른 총(銃)버리고 군복(軍服)도
벗어야지. 민간인(民間人)처럼 하고 있으면, 적병(敵兵)들도 죽이지
않겠지."
상황(狀況)이 이랬으니, 이들은 도박(賭博) 자금(資金)이 모자라면
흔히 가지고 있던 총(銃)을 저당(抵當)잡혔다.
정부(政府)는 이런 병사(兵士)들에게 봉급(俸給)을 주지 못할 때면,
이들 무리로 하여금
부잣집을 약탈(掠奪)하는 것도 묵인(黙認)해주기도 했는데,
경성(京城)안에 겨울철 도적(盜賊)이 많은 것은
정부(政府)가 겨울 봉급(俸給)을 병사(兵士)에게 주지 않는 것이
한 원인(原因)이었다.


20. 무예(武藝)


조선(朝鮮)의 무예(武藝)중에는 현재(現在)존재(存在)하는
것은 궁술(弓術)뿐이다. 칼과 창이 없지는 않지만,
그걸 연습(練習)?狗졍?사람들은 없다.

사법(司法)제도(制度)


21. 감옥(監獄)


죄인(罪人)은 옥(獄)에 들어가는 비용(費用)을
모두 스스로 감당(堪當)해야 한다.
그러므로 돈 한 푼 없는 자(者)는
감옥(監獄)에서 굶어죽는 것을 면(免)하기 어렵다.
반면(反面)에 뇌물(賂物)을 바치는 경우(境遇)에는
어떠한 큰 죄(罪)라도 쉽게 방면(放免)된다.

▲ 감옥(監獄)

22. 형벌(刑罰)


조선(朝鮮)의 형벌(刑罰)은 하나같이
관리(官吏)의 뜻에 따라 임의적(任意的)으로 행(行)해지는 것이
대부분(大部分)이며 전국(全國)에 똑같이 적용(適用)되는
일정(一定)한 형벌(刑罰)이 없다.

23. 대리(代理)변제(辨濟)


조선(朝鮮)에서는 빚을 갚지 못할 때에는
부자(父子)형제(兄弟)가 대신(代身)하여 빚을 갚는 것을
의무(義務)로 하고 있다.
만일(萬一) 형제(兄弟)부자(父子)가 대신(代身)갚는 것이
불가능(不可能)할 때는 그 9족(族)중(中)의 한 사람에게
대신(代身) 변상(辨償)시키고자 한다.
그러므로 친척(親戚)중에 한 사람이라도
도박(賭博)을 즐기는 자(者)가 있으면,
이것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큰 피해(被害)를 입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 일본(日本)의 채권자(債權者)들은
조선(朝鮮)의 이런 습관(習慣)을 이용(利用)해서 대금(貸金)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조선인(朝鮮人)들 중(中)에는
점차(漸次)이런 관습(慣習)의 부조리(不條理)를 깨닫는 이들이
있었다. 특(特)히 경상도(慶尙道) 밀양(密陽) 부사(府使)등(等)은
일본인(日本人)의 속임수에 속지 말라고 조선인(朝鮮人)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때문에 일본(日本)의 채권자(債權者)들은 빚을
받지 못하는 피해(被害)를 보고 있다.

기이(奇異)한 풍속(風俗)


24. 조혼(早婚)


조선(朝鮮)에서 가장 기이(奇異)한 풍속(風俗)은 조혼(早婚)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자(男子)들은 12,3세의 나이로 장가(杖家)를 간다.
그리고 부인(婦人)은 자기(自己)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고르게 되는 것이 보통(普通)이다.
12,3세(歲)짜리가 20세(歲)전후(前後)의 여자(女子)와 결혼(結婚)
하는 것은 조선(朝鮮)에서는 결코 이상(異常)한 것이 아니다.
다만 어린 남녀(男女)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조선(朝鮮)의 인구(人口)가 매해 감소(減少)하는 원인(原因)은
여기에 있을지도(실제(實際)로 1세기(世紀)이전(以前)보다
인구(人口)가 100만(萬)명(名)가량(假量) 줄어들었다.


25. 처(妻)를 손님에게 내 놓는다.


조선(朝鮮)에서는 돈만 주면 처첩(妻妾)으로 하여금 손님의
머리맡에서 시중(市中)을 들게 한다.
이것은 남편(男便)과 상의(相議)한 뒤의 일이다.
그런데 최근(最近)에 일본(日本)사람들 중에는
조선(朝鮮)에 오래 머문 상인(商人)들의 경우(境遇),
이런 추(醜)한 풍속(風俗)을 배워서 자신(自身)의 마누라에게
강요(强要)하는 자(者)들도 있다.

26. 전염병(傳染病)환자(患者)


여름에 야외(野外)를 걷다보면, 곳곳에 초막(草幕)을 짓고
수척한 사람이 고통(苦痛)서럽게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전염병(傳染病)에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조선(朝鮮)에서는 역병(疫病)을 죽을병(病)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치유(治癒)된 사람을 요행(僥倖)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병(病)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가족(家族)을
전염(傳染)시키는 것을 걱정하여, 야외(野外)의 작은 집에 옮겨
놓는 것이다. 물론(勿論) 약(藥)을 주는 일이 없었으니,
대개(大槪)버려서 죽이는 것과 진배없었다.


27. 천연두(天然痘)로 죽은 아이의 장례식(葬禮式)


아이가 천연두(天然痘)로 죽을 때는
그 시신(屍身)을 묻지 않고 가마니에 넣어서
새끼로 가로 세로로 묶고 이것을 야외(野外)의 나무에 매달았다.
그렇게 하면 삼복(三伏)의 더위에는 시신(屍身)이 부패(腐敗)하여
썩은 액체(液體)가 지상(地上)에 떨어지고, 악취(惡臭)가 끝없이
사방(四方)에 흩어져서 코를 찌르게 된다.
그리고 시신(屍身)이 모두 썩어 백골(白骨)이 되면
뼈를 추려서 땅에 매장(埋葬)했다.
이런 풍속(風俗)은 특(特)히 한반도(韓半島)남쪽의
삼남지방(三南地方)에서 횡행(橫行)하고 있었다.
(마마신이 찬바람을 맞고 떠나가라는 의미(意味)에서 행해졌던
것이다.


조선인(朝鮮人)들의 의복(衣服)문화(文化)


28. 한복(韓服)의 아름다움


조선(朝鮮)의 한복(韓服)은 정말로 아름답다.
한복(韓服)의 풍치(風致)는 가히 세계(世界)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程度)다. 그러나 소매는 길고 갓은 크고, 불편(不便)한데
있어서도 세계(世界)으뜸일 것이다.
조선(朝鮮)사람의 거동(擧動)이 우유부단(優柔不斷)하여
활발(活潑)하지 못한 원인(原因)은,
이 세계(世界)으뜸의 의복(衣服)을
입는데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옷과는 대조적(對照的)으로
그들이 사는 집은, 개집과 돼지우리의 수준(水準)과 같다 하겠다.

29. 두루 주머니


조선인(朝鮮人)은 허리 주위(周圍)에
반드시 2,3개(個)의 주머니를 항상(恒常)늘어뜨리고 있다.
주머니는 담배를 넣는 것, 도박(賭博) 도구(道具)를 넣는 것,
거울을 넣는 것 등(等)으로 크게 구분(區分)된다.
그들은 용모(容貌)를 꾸미는 버릇이 심해서
시간(時間)만 있으면 수시로 거울을 보고 수염(鬚髥)을 다듬었다.


30. 모자(帽子)를 쓰지 않으면 벌금형(罰金刑)


조선(朝鮮)에서 모자(帽子)는 필수품(必需品)이다.
그리고 계급(階級)과 직책(職責)에 따라 그 종류(種類)도
다양(多樣)하다.
경성(京城)에 있는 일본인(日本人)들은 외출(外出)할 때에는
반드시 모자(帽子)를 써야만 했다.
만약(萬若)이를 어기면 벌금(罰金) 50전(錢)을 내야했다.
대신(代身)에 길에서 노상방뇨(路上放尿)를 해도 벌금(罰金)같은
건 없다.

31. 우산(雨傘)


조선(朝鮮)에는 원래(元來) 우산(雨傘)이 없었다.
일본(日本)을 통해 보급(補給)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우산(雨傘)을 가진 자(者)는 10명(名)중 한두
사람 정도(程度)로 대개는 우산(雨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조선(朝鮮)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는 갓 위에 기름종이로 만든
덮개를 부쳤어 비를 막고 옷은 그냥 젖은 채로 걸어 다닌다.


32. 부녀자(婦女子)의 기호(記號)


양반(兩班)부녀자(婦女子)는 다른 사람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풍습(風習)때문에,
의복(衣服) 장식품(裝飾品)등을 조달(調達)하는 것에도
항상(恒常) 모두 하인(下人)에게 구(求)해오도록 시킨다.
그런데 부녀자(婦女子)에게도 엄연(奄然)히 기호(嗜好)가 있다.
하인(下人)의 기호(嗜好)를 어떻게 부녀자(婦女子)의 기호(嗜好)에
맞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물건(物件)을 사는 것은 일체(一切)남자(男子)에 맡기게
되니 조선(朝鮮)의 부녀자(婦女子)는 남자(男子)의 생각 안에서
그 기호(嗜好)를 만족(滿足)시킬 수밖에 없다.

33. 모자(帽子)만드는 기술(技術)


조선(朝鮮)의 미술품(美術品)중에는 전혀 감복(感服)할만한 것이
없지만 삿갓이나 관 등을 말꼬리로 짜는 것을 보면
그 섬세(纖細)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감탄(感歎)하기도 했다.
"이것은 마치 거미가 거미집을 만드는 것 같이 섬세(纖細)하다."


34. 빨래


개울가에 나가면 옷을 빨래하는 여인(女人)네들이 많은데
물에 담군 옷을 평평(平平)한 돌 위에 놓고
한자 정도(程度)되는 막대기로 두들겨서 때를 없앤다.
이렇게 하면 옷감이 상하기 십상이지만
때는 완전(完全)히 없앨 수 있었다.


조선인(朝鮮人)들의 식생활(食生活)


35.


기근(飢饉)이나 흉년(凶年)에 대처(對處)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면
조선(朝鮮)으로 와야 한다. 이들의 식탁(食卓)에는 야외(野外)의
풀잎의 대부분(大部分)이 반찬(飯饌)으로 올라온다.


36. 남은 음식(飮食)을 탐(貪)하는 자(者)


한 주막(酒幕)에 머물렀을 때였다.
주모(酒母)는 나의 돈 주머니가 무거운 것을 보고
좋은 손님이라 생각했는지, 저녁상을 한 상 가득히 차려왔다.
이윽고 내가 저녁밥을 들었을 때, 어떤 남자(男子)하나가 다가왔다.
주인(主人)은 그의 모습(模襲)을 보자, 퉁명스럽게 얘기를 한다.
주모(酒母) "여기 무슨 용무(用務)가 있어서 왔어? 썩 돌아가."
그러자 남자(男子)가 말했다.
남자(男子) "나 일본(日本)사람 구경하려고 왔어."
주모(酒母) "네가 남은 음식(飮食)때문에 왔다는 거모를 줄 알고?"
이 말을 듣고 나는 설마 그러겠는가! 했다.
그래서 주인(主人)의 말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로 그 남자(男子)는 남은 음식(飮食)을 먹으려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주인(主人)은 그걸 주기 아까워 서 그자를
그토록 나무랐던 것이다.

37. 구더기 낀 상어고기


상어의 지느러미는 중국인(中國人)의 기호품(嗜好品)으로서 그
가치(價値)가 매우 귀하다. 다만 상어잡이는 지느러미만 취(取)하고
고기는 바다 가운데로 버리는 것이 보통(普通)이었는데
어느 날 한 일본(日本) 상인(商人)은 이렇게 버리는 몸통이 아깝다고
해서 몸통을 조선(朝鮮)에 팔아볼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상어 몸통을 소금에 절였다.
그리고 부산(釜山)을 향(向)해 출발(出發)했는데 때마침
초여름이었는데 2,3일(日)지나지 않아 고기는 부패(腐敗)하고,
이상(理想)한 냄새가 배의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와 4,5일(日)
후(後)에는 구더기가 끓어서 거의 감당(勘當)할 수 없게 되었다.
이대로 부산(釜山)에 도착(倒着)하면
콜레라의 매개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겨우 가져왔는데
중도(中途)에 버리기도 그래서,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苦悶)
하다가 낙동강(洛東江)하구(河口)를 거슬러 올라가서
고기를 팔만한 곳을 물색(物色)했다.
그래서 한 마을을 발견(發見)하고 상어를 팔아보기로 했다.
한동안(同案)배 밑바닥에 닫아 두었던
상어고기를 꺼내서 해안(海岸)에 운반(運搬)했는데
냄새가 코를 찌르고, 구더기가 셀 수 없을 정도(程度)로 있었지만
고기는 그다지 변(變)하지 않았다.
마침 많은 조선인(朝鮮人)들이 모여와서 사가기를 원(願)했다.
한 근(斤)에 얼마씩이라고 하면,
그들은 가격(價格)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으면서도
크다, 작다만 평(評)했다.
냄새나 구더기를 신경(神經)쓰는 조선인(朝鮮人)들은 전혀 없었다.
그러더니 곧 고기는 몽땅 동이 나버리고
일본(日本) 상인(商人)들은 뜻하지 않게 돈을 챙길 수 있었다.

38.


조선인(朝鮮人)들은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집집마다 기르는 개들은
전적(全的)으로 고기를 먹기 위(爲)해서였다.
한 마리의 가격(價格)은 일본(日本)통화(通貨)로 30~40전이었으니
귀한 손님이나 좋은 일이 있지 않으면 함부로 잡지 않았다.
마치 일본(日本)사람이 닭이나 돼지를 잡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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