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한·미 동맹 확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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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한·미 동맹 확인서



1만7000자 정상회담 선언 문
한·미 관계 긍정 묘사 놀라워
바이든, 新세계 질서 천명…
한국 끌고 가겠다는 의지 보여
쇠진해가던 동맹의 기운
되살린 점 시의적절하다




지난 5월 21일 발표된
문재인-바이든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을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지난 4년간 친북·친중·반미
성향을 보여 온 한국 좌파 정권의
수장(首長)이 미국 민주당 출신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서 내놓은
성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찰떡 동맹’을 강조한
것이어서 놀랐다.
1만7000여 자에 달하는
장문의 공동성명은 한·미 관계의
‘동맹 확인서’였다.
한·미 관계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한 외교 문서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성명은 70년 전 한국과 미국이
전장(戰場)에서 함께한
우정과 희생과 신뢰를 서두로 해서
지역과 세계의 안정, 인권, 법치에
기여한 동맹 관계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linchpin(쐐기 핵심)’이란
단어를 두 번씩이나 사용했다.
어떤 평자(評者)는
“마치 2차 대전 직후
미국·영국·소련의
모스크바 3상회의 담화문을
보는 것 같다”
고 했다.
그것은 한·미 간의 성명이라기보다
미국의 신(新)세계 질서를 천명하고
대(對)중국 전략을 조망하는
마스터 플랜 같았다.
성명의 전체적 분위기는
미국이 한국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능동적으로 끌어안는 인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이든이
이런 신세계적 질서를
하필이면 왜 한국 대통령을
파트너로 삼아 언급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어째서 앞서 있었던
일본 스가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건너뛰고 한국을 그 ‘무대’로
삼은 것일까?
북한과의 ‘평화 프로세스’에
올인해 합동 훈련 등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를
축소하는 데 급급한 문 정권이었다.
대외 교역을 이유로
중국에 이끌려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인 쿼드 전략에
불참하는 문 정권이었다.
미군 퇴진을 요구하고
한·미 관계를 폄하하는
반미 데모가 공공연히 벌어지는
한국 아닌가?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그런 나라에
언제까지 미군을 주둔시킬 것이며
언제까지 방위 공약에
매달릴 것인가 하는 논의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은 조만간
‘한국을 버릴 것’이라는
안보 불안이 한국 내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시점에 바이든 정부는
한국과의 동맹을 새삼
굳건히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것을 두고 미국이 중국에 맞서는
전초이자 거점으로서의 한국을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한국에 미군 기지가
있음으로 해서 북한의 그 어떤
대륙 간 돌발 행위도
억제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분석이
사실에 기초한 것이건
단순히 기우이건 그것은
한국에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한국을 떠나지 않을뿐더러
한국을 보호하겠으며
경제적으로도 더욱 한국을
연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나라마다 국가적 이익이 있다.
미국에 우리가 이용 가치가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



또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미국의 의도를
미리 알았느냐,
또는 사전 협의가 있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알고 갔으면 문 대통령은 이제
한국의 안보에 관해 뒤늦게나마
현실을 인식한 것이고
‘모르고 당했다’고 해도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바라건대 문 대통령은
대북 문제에서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문 대통령은 평양 선언 이후
지난 3년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며 노심초사해왔다.
비굴하리만치 고개 숙여왔다.
하지만 북한의 태도는 실망을 넘어
모욕적이라 할 만했다.
이제 임기 말이 되면서
종래의 방식과 처방으로는
북한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뀐 것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대북 자세도
종북 선의에서 강고한 대응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렇게 보고 싶다.



일부 비평자들은 문 대통령의 방미가
고작 55만명 군인의 백신을 얻어오고
44조원의 투자를 내준 대신
얻은 게 무엇이냐고 하지만
그간 어려운 고빗길에
내동댕이쳐져 있던 한국의 안보가
한·미 동맹의 재설정으로
이처럼 되살아날 수 있게 된 것은
그 어떤 것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뉴욕타임스 칼럼은
한·미 공동성명이
‘북한의 비핵화’ 대신
‘한반도의 비핵화’로 후퇴한 점,
북한이 요구해온 ‘평화 협정’을
수용한 듯한 ‘항구적 평화’를
언급한 점,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미를 보호할 구체적 장치에
언급이 없는 점들을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맞는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기운이
쇠진해 가는 시점에서
그것을 되살리는 선언을
한 것만으로도 이번 성명은
한국인에게는 시의적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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