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隔世之感)
AD 함흥  



◆격세지감(隔世之感)    


격세지감(隔世之感)은,
그리
오래지않은동안 풍속이나 풍습이
아주많이 바뀌어서
딴 세상이 된것같은 느낌이다.


광복후 73년,
한 세기도 지나기전에
우리는 대장간에서
반도체, 자동차, 가전,
잠수함과
비행기를 만들어 수출하고있다.

21년 상반기 기준
이미
3000억불(340조원) 넘게 수출하고있다.

1. 돈.


대장간 시절의 돈의 단위와
지금의 돈 단위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두세대전 돈의 단위는
지금 기준으로는
애들 과자사먹는 액수다.


억대단위의 돈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람들 입에서 말해지지도 않았다.
돈은
항상 부족했고
이웃끼리 급한돈은
꿔주고 갚는일이 다반사였다.
모두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큰 돈은
가진사람도 없었고
개인들이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는일도 없었다.


서민들은 한평생
은행에
가 본 일 없이 살았고
큰 빚을 지는일도 없었다.
지금은
개인도 수억,
수십억을 가지는 세상이 됐으니
격세지감이  아닐수 없다.

2. 직업.


지금은
대표적인 직업만도 15.000가지가 넘고있다.


그러나
두세대 전만해도
서울법대를 졸업한 친구가
고시를 보지않고 취직한다면
상업은행이 최고였다.

직종도 많지않았고
대졸자도 많지않았기 때문에
취업의 문은 넓었다.

지금과 같은
대기업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대개는
자그마한 자영업을 했고
학교교사는
촉망받는 직업이기도 했다.


공무원도
좋은 직업이었고
판,검사가 되는것도 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지금과 같은
취업전쟁이나 알바는
거의 없는
소박한 시대였다.
대신,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게 살았다.

3. 택배.


지금은
택배가 거대한 사업이지만
그때는 택배가 없었다.
대신
음식배달은 있었다.


유명한
냉면집의 배달원들은
큰 목판에
냉면 10그릇 이상을 싣고
한쪽 어깨에 얹은채
자전거를 타고 배달했었다.


정말
묘기에 가까운 재간이라
큰 구경거리였다.
물론
그집의 냉면맛은 최고였다.

4. 인명,


인명(人命)은 사람의 목숨이다.
지금은
사람목숨이 파리목숨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그 현장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목숨이
제값을 가지고있던 시절이었다.


가마니에 덮힌
시신을 바라보는 눈길은
모두가
한결같이 안타까운 것이었다.
시신은
이상하게 작아보였고
가마니
옆으로 삐져나온 사지는
인간의 것이 아닌것처럼 보였다.

5.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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