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야 할 선심복지 흑역사
AD 함흥  


끊어야 할 선심복지 흑역사
 
 

이용권 사회부 차장(국민일보)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즉위교서를 통해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진휼(賑恤)하고 부역(賦役) 면제’를 선포했다.

 

환과고독은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을 의미한다. 요즘 말로 바꾸면 취약계층 정도 되겠다. 태조는 환과고독을 챙기는 것이 왕정(王政)으로서 먼저 할 일이라고도 했다. 

 

혼란스러운 고려 말기의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조선 개국과 동시에 내세운 ‘복지’ 선언이다. 진휼은 천재지변이나 기근이 발생했을 때 곡식 등을 지급하는 제도인데, 당시 지출 규모는 상당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흉년 때 곡식을 무상 지급한 대상 규모는 전체 인구의 10% 이상인 적도 있었다. 무상 지급 외에도 조선은 춘궁기에 쌀을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환곡을 시행했다. 제도 시행 결과는 이미 역사책에 기록돼 있다.

 

 특히 환곡은 조선 후기엔 조선왕조를 무너트리는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폐해가 심각했다. 제도의 취지는 좋으나 재정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조선은 농업이 주 경제였지만, 가뭄과 홍수가 빈번한 지리적 위치에 영농 기술도 떨어져 농업 생산성이 낮은 재정 위기 국가였다. 이런데도 조정은 환과고독을 위해 낮은 세율을 유지했고 조세를 수령하는 각 지방 관서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다가 각종 비리로 엇나갔다.

 

 결국, 조선은 참다못한 농민의 봉기를 간신히 억눌러 오면서 쇠락했고, 종국에 외세 침략으로 무너졌다.

조선 개국 이후 630년이 지났지만, 현재의 모습도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재정은 한정적인데 퍼주기식 복지 정책은 끊이지 않았다. 진휼은 현재의 재난지원금, 환곡은 단기적으론 소상공인지원금,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에 비유할 만하다.

 

 정부는 지난 코로나19 기간에 재난지원금을 무려 6차례나 지급했다. 재정이 충분하면 문제없겠지만, 정부는 이를 위해 2년간 매년 100조 원이 넘는 적자 국채를 발행했다. 

 

문재인 정부 5년에만 763조 원의 국가부채가 늘었고, 지난해 국가부채는 2200조 원을 넘어섰다. 재정을 고려치 않은 복지 정책에서 비롯된 청구서다. 문제는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선거 과정에서 선심성 공약을 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윤 당선인의 국정 공약 200개를 이행하는 데 266조 원 규모의 재원이 소요된다고 했다.

 

 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선심성 복지 사업을 쏟아내고 있다. 효도 수당, 초등학생 용돈 수당 등 대부분 ‘매표성 복지’ 정책이다. 재정은 거덜 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뿌려댄 탓에 전국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평균 50% 밑으로 떨어졌다.

이럴 때 차기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심성 공약과 정책은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최우선 국정 과제로 내세운 공적연금개혁이 그 시작이다. 지난해 국가부채 중 1138조 원은 미래에 퇴직할 공무원, 군인에게 내줄 연금을 미리 계산한 연금 충당부채다.

 

 매년 수십조 원의 국가 재정을 축내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건드리지 못하고, 국민연금만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손대면 머지않아 조선 시대처럼 국민 봉기가 일어날 수도 있다.

 
          네이트온 쪽지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