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초입에는 낡은 2층짜리 건물이 울타리에 둘러싸인 채 방치되어 있다. 지금은 폐허가 된 이 건물은, 1973년부터 1996년까지 기지촌의 성병관리소로 사용된 장소다. 미군을 상대하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성병 검진 의무를 부과하고, 검진증이 없거나 성병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이들을 강제로 수용해 치료 명목으로 감금했던 국가폭력의 현장.
동두천시는 이 건물을 철거하고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단체와 학계, 그리고 국제사회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역사적 장소를 철거해선 안 된다며 반대한다. 비극적인 기억이 망각되지 않도록 하고, 역사를 왜곡하거나 과거의 사실을 부인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서도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24년 8월 12일에 발족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과거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유린 현장인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 건물을 없애버리지 말고 ‘국제인권평화기념관’ 등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옛 성병관리소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가 있는 일일까? 그 의미를 시민들과 함께 찾아가는 뜻 깊은 답사 프로그램이 지난 5월 23일에 개최됐다. 두레방, 역사문제연구소,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공동 주최한 〈동두천 성병관리소×기지촌 빼뻘 답사〉 현장을 따라가보았다.
이번 기지촌 답사는 “한국사회의 성매매 산업 해체를 지향함”과 동시에 “군사정책, 관광정책, 도시재개발에 의해 성매매 집결지가 없어져 버리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성매매 집결지 ‘소거’ 문법에 페미니즘 언어로 문제의식을 던져보고자”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여성의 몸’을 외화 획득 수단으로 삼은 ‘국가폭력’의 장소

철거하면 안 될 근대 유산…평화와 인권의 기억공간으로 거듭나야
소요산 자락의 옛 성병관리소부터 보산동 일대, 상패동 공동묘지, 턱거리 마을, 빼뻘 마을을 방문했고, 이후 의정부역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간담회를 가졌다.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운영된 성병관리소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성병 의무검진, 강제수용, 치료 명목의 감금 등 인권침해가 자행된 공간으로 이른바 ‘낙검자 수용소’ 또는 ‘몽키하우스’로 불렸다. (관련 기사: “국가가 미군 상대 성매매 조장했다” https://ildaro.com/7136)
이지완 역사문제연구소 활동가는 “이곳은 여성의 몸을 외화 획득의 수단으로 삼았던 국가폭력의 적나라한 증거”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1969년 닉슨 독트린으로 주한미군 감축이 추진되자,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권은 미군 주둔을 유지하기 위해 ‘기지촌 정화 운동’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며 “‘미군 위안시설’로 지정된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기지촌 여성들은 주 2회 정기적인 검진을 강요”당했다.
“여성들은 가슴에 명찰이나 보건증을 달고 다녀야 했고, 강제 수용된 여성들은 과다한 페니실린 투여로 인한 약물 쇼크로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미군이 어디서 성병에 걸렸는지 지목만 하면, 여성들은 경찰의 토벌을 통해 정당한 검사 절차 없이 이곳으로 끌려와야 했다.”
이지완 활동가는 “성병관리소 건물은 한국 정부가 단순히 ‘성매매를 묵인해왔다’는 차원을 넘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수단으로서 동원, 관리하고 착취해왔다는 걸 보여주는 건물”이라는 점도 짚었다.

이 건물 뒤편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탐방 날은 농성 634일째였다. 답사단은 최희신 공대위 집행위원장의 설명을 들으며 건물을 둘러보았다. 최 위원장에 따르면, 성병관리소의 부지는 약 2,300평으로 건물 자체의 바닥 평수는 약 100평인 2층 건물이다. 내부는 현재 들어갈 수 없지만, 1층에 진료실과 식당, 2층에는 창문에 도주를 막기 위한 쇠창살이 설치된 7개 수용 입원실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 방엔 20명씩, 총 140명 수용 가능한 시설이었다.
동두천시는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을 이유로 부지를 매입하고 철거를 추진 중이다. 최희신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이 건물을 단순히 헐어버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평화/여성 인권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여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윤금이 피살 사건: ‘민족주의’ 그늘에 가려진 여성 인권
답사단은 동두천시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였던 캠프 케이시 정문 앞, 보산동 일대로 향했다. 기지촌 전성기였던 1960~1980년대, 동두천시 세수의 80%가 보산동 기지촌에서 나왔다고 할만큼 달러와 군사권력이 교차하는 지대였다. 미군을 대상으로 기지촌 경제가 성장하면서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국가는 이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 부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지촌 여자’로 낙인찍어 통제했다.
또한 이곳 보산동은 1992년 10월 28일 세상을 경악케 한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 성폭력 살인 사건’(윤금이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시신이 처참하게 훼손된 채 발견된 이 사건은 미군 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주한미군 범죄를 처리하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하는 주권회복 운동으로 이어졌다.

최우영 역사문제연구소 활동가는 “시민사회에서 ‘주한미군의 윤금이 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조직되었고, 공대위는 재판 때마다 거의 수백에서 천명 가까이 되는 방청객을 조직했고, 매주 수요일 서울역에서 집회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18개월 동안 투쟁이 계속되었고, 덕분에 케네스 마클은 구속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 사건의 공론화 과정은 큰 한계를 지적 받는다. 최 활동가는 “사건이 ‘한국인에 대한 미국의 범죄’나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로만 환원되면서, 정작 기지촌 안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여성 인권 유린과 성폭력의 현실은 제대로 포착되지 못했다”는 점을 짚었다.
“기지촌 여성들은 미국인 뿐만 아니라 클럽 주인이라던가 지역 남성으로부터 일상적으로 착취와 폭력을 겪어왔는데, 그런 점에 대해서는 사실 논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살아서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뒤에야 비로소 ‘민족 주권’의 상징으로 소비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최우영 활동가는 ‘윤금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는 ‘미군 주둔 아래 형성된 기지촌의 구조와 그 속에서 오랫동안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던 여성들의 존재를 어떤 시선으로 복원할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파묘되고 지워진 죽음: 상패동 무연고 묘지와 광암동 턱거리마을

동두천 상패동에 위치했던 공동묘지에는 1960~1970년대에 이곳으로 유입되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기지촌 여성들의 무덤이 가득했다고 한다. 이름 대신 숫자가 적힌 나무토막만이 꽂혀 있던 무덤들은 2020년대 들어 공원 조성사업이 추진되면서 모두 파묘되어 300km나 떨어진 경주의 추모공원으로 옮겨졌다.
유골들은 10년간 보존된 후 완전히 소멸될 예정인데, 지자체에는 무연고 기지촌 여성 묘지에 대한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다. 자본과 개발 논리에 의해 이들의 존재 자체가 완벽히 ‘소거’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방문한 광암동 턱거리마을(캠프 호비 앞)에서는 아직 남아있는 묘비가 하나 있었다. 1971년에 사망한 ‘순자 레이놀즈(Soon Ja Reynolds)’의 묘다. 묘비엔 “순자 레이놀즈. 내 사랑 평화롭게 쉬기를. 당신을 영원히 생각하고 있기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로 합쳐져 있다오”라고 쓰여 있었다 한다. 탐방단은 미군 부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한 ‘박순자의 묘’ 옆에 꽃을 헌화했다.
의정부 빼뻘마을과 ‘언니들’의 쉼터 두레방
답사의 마지막 현장은 의정부 고산동의 ‘빼뻘마을’이었다. 캠프 스탠리 주변에 형성된 이곳은 배나무가 많아 ‘빼뻘’이기도 했지만, 기지촌 여성들 사이에서는 “한 번 발을 들이면 빼도 박도 못한다”는 자조 섞인 이름으로 불렸다. (참고 기사: ‘기지촌엔 도깨비가 산다’ 어떤 죽음들의 이야기 https://ildaro.com/9277)

과거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했던 이 마을의 여성들을 위해 1986년 문혜림이 설립한 공동체가 바로 ‘두레방’(My Sister's Place)이다. 2022년 세상을 떠나 지금은 고인이 된 문혜림 활동가는 헤리엇 페이 핀치벡이라는 본명을 가진 미국인으로, ‘나라도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생각으로 기지촌 여성들이 쉴 수 있는 피난처, 두레방을 만들었다.
이번 빼뻘마을 답사는 전 두레방 공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과거 성병 검진이 이루어지던 보건소 건물을 임대해 평화와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사용했었다. 이 건물은 전국에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기지촌 성병 보건소다. 하지만 최근 의정부시는 ‘새뜰마을사업’이라는 도시재생 명목 하에 두레방 측에 퇴거를 통보했고, 두레방은 공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정강실 두레방 활동가는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해 온 활동경험을 공유했다.
“두레방은 1980년대 당시 유기농 당근과 우리밀로 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자활 사업을 운영했고, 방치된 혼혈아동들을 위한 놀이방과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을 돌보았다. 또한 약물 중독과 폭력에 시달리다 하루 한 끼조차 챙겨 먹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해 매일 안부를 묻고 공동 식사를 제공했다. 식사를 통해 매일 안부를 챙기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기지촌 여성과 연대자들의 역사적 장소 또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두레방 언니들’은 “이 공간이 후대가 알아야 하는 역사이자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역사”라며 공간의 보존을 원하고 있다고, 두레방 활동가들은 전한다.
역사와 증거와 책임이 사라지는 ‘소거’에 맞선 기억운동

답사를 마친 후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이룸, 두레방, 역사문제연구소 활동가들과 참가자들이 모여 지워지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개입할 것인지 논의했다.
기용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는 청량리와 이태원 등 도시 중심부의 성매매 집결지에서 벌어지는 재개발과 ‘소거’의 과정을 공유했다. 거대한 자본과 재개발 앞에서 팻말 하나 남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려나야 했던 무력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특히 이태원의 경우, 과거 미군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던 기지촌의 역사에서 현재는 트랜스젠더와 소규모 업소 여성들만이 남아있는 상태로, 재개발로 인해 이들마저 계속해서 쫓겨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활동가들은 또한 “공간을 여성주의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드러내고 소거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진 두레방 원장은 “기지촌 성매매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이주 여성들을 통해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착취의 구조”임을 강조했다. 또한, 2022년 대법원이 기지촌 성매매가 국가 폭력임을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해자를 위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답사단 참여자 한 명은 철거 위기에 놓인 공간들을 보며 “혈연적 유족이 없는 이 여성들을 위해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그들의 유족이 되어 기억운동을 계승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은진 원장은 “오늘날 우리는 성매매 산업의 해체를 이야기한다. 이는 분명 중요한 과제이며, 많은 여성주의 운동이 오랫동안 싸워온 영역이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은, 해체의 방식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기억”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남겼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 집결지와 기지촌은 종종 재개발을 통해 사라진다. 이 과정은 환경개선, 도시발전, 안전한 사회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워지는 것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역사, 국가와 사회가 가한 폭력, 그리고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 함께 사라진다. 깨끗하게 정비된 도시 속에서,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