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철봉원장의 사망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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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 오후 3시,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원자력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고 장철봉 원장(탈북단체 평화의 집)의 장례식이 많은 탈북인들과 단체장, 또한 고인의 지인들의 관심과 추모속에 진행되었다.
북한군 민경부대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지 19년만에 고인은 지난 12월 20일, 간암말기라는 불치병 진단을 받고 50여일만에 사망한것이다.
1996년 8월 16일, 북한군 민경부대에서 군인으로 군무하던 고 장철봉원장은 자유를 찾아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귀순했다.
 그는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귀순하는 자신을 저지하기 위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으며 추격하는 동료군인들과 혈투를 벌리며 장마로 인해 불어난 휴전선의 강물을 따라 건너 무사히 대한민국의 품에 안길수 있었다.
당시 언론은 이러한 고 장철봉원장의 귀순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올곧고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장철봉원장은 남한에 와서 줄곧 탈북자들의 권익을 찾는 일에 매진한 흔치않은 탈북단체장이었다.
고인이 남한에 귀순한 당시는 탈북자들에 대한 조사과정에 공권력의 무차별인권유린행위가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이에 굴하지 않고 부당한 공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운 탈북자중에 흔치 않는 사람이다.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국내입국 탈북자들의 권익투쟁에 몰두하다보니 가장으로서 가정을 잘 돌보지 못했던 고 장철봉원장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전처와 이혼을 한 가슴아픈 사연도 있다. 
고인은 타고난 의협심에 남의 불행을 보면 참지 못했으며, 특히 약자의 아픔에 함께 하는 그의 의로운 행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 장철봉원장의 이런 사고와 행동으로 아마 국내 입국 10년 이상된 탈북자사회에 장철봉원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이런 그였기에 갑자기 사망한 그의 빈소에 짧은 장레식일정에도 수맍은 탈북인들과 단체장들이 어려운 경제적 여건속에서도 장례비용을 들고 조문한것을 보면 알수 있다.
고 장철봉원장의 장례식장에 온 많은 탈북인들과 단체장들의 화두는 단연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사장 정옥임)에 대한것이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정옥임이사장)에 고소당해 체포영장이 발부돼 대전에서 체포돼 경찰서로 끌려와 조사를 받았던 고인은 평시에 울분을 토하고 특히 2014년 국정감사장에서 재단이사장이 일부 탈북자들을 악성탈북자들로 비하한 발언으로 많은 탈북자들이 직업을 구하는데 피해를 입는다고 격분해하였으며 이러한 일들은 평소 올곧은 고인의 심정을 더욱 자극해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허다하였다. 
울분에 젖은 나날을 보내다 갑작스런 불치병을 만나 급속히 병세가 악화돼 결국 세상을 떠난 고인의 심정을 잘 알기에 많은 탈북인들과 단체장들은 장례식장에 보내온 재단 정옥임이사장 명의의 추모화한을 밖에 내다버리라는 의견이 다수여서 한참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의 품위와 장례식을 주관하는 주최자측의 간곡한 만류로 일단 구석에 따로 놓아두는것으로 진정을 시키는 일도 일어났다.
이 장을 빌어 고인을 추모하려 장례식장을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인을 대신해 감사를 드린다.
고 장철봉원장은 간암 말기의 극심한 고통속에서도 항암치료에 의존하는 구질한 수명연장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고 하면서 현대의학적인 치료마저 거부하였다.
양육강식의 살벌한 이 땅에서 혈연, 학연, 지연이 없는 열악한 적응환경속에 어려운 정착을 하는 탈북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헌신하다 떠나간 고 장철봉원장의 투철한 의협심과 공익심에 이 장을 빌어 경하를 드린다.
오랜 기간의 비영리단체 활동으로 인한 고인의 어려운 경제형편을 잘 아는 고 장철봉원장이 주축이 되어 창립된 고향축구단 회원가족들과 지인들이 십시일반 치료비에 보태라고 모아둔 후원금에도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심지어 거부하기도 하였다.
오히려 그는 병문안과 치료비 후원이 부담스럽다며 남한에 온 후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친형같은 지인에게 부탁하여 일절 병문안과 수명연장의 치료를 거부하고 혼자 쓸쓸이 운명을 맞이하였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옆집 사람의 경찰신고로 2015년 2월 12일 밤 11시 45분경에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된  고 장철봉원장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 그와 함께 활동해 온 탈북인단체총연합은 열과 성을 다해 노력 할것이다!
다시 한번 자유를 찾아 사선을 헤치고 남한에 온 후 투철한 정신으로 탈북자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 일생을 보낸 고인의 명복을 빌며, 특히 이러한 고인을 잊지 않고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어준 모든 탈북인들과 단체장들, 소중한 고인의 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4년 2월 15일
탈북인단체총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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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강직   2015.02.15 18: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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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까운 사람을 잃었습니다. 성품이 강직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남을 위해 노력하여 오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혈연단신 혼자 운명을 지켜준사람도 없이 하늘나라로 갔지만 우리 전체 탈북민들이 고인을 위하여 슬퍼하며 울고 있다는 사실을 고인도 하늘에서 다 보고 듣고 있을 겄입니다. 재단에서는 장례식장에 나왔는지요? 예로 부터 결혼식집에는 못가도 초상집에는 가라는 속담이 있지요? 물론 왔을것이라고 봅니다. 탈북자들을 돕는 재단은 다른 때는 못가도 부모의 입장에서 장례식장에는 반드시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부모 형제들과 이별하고 외로이 쓸쓸하게 설을 맞이 하는 탈북민들을 위하여 위로와 격려를 하는 행사는 꼭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재단의 존재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것도 하지않으면서 진정으로 우리 탈북미들을 위하여 밤낮으로 뛴다고 할수있습니까? 많은 탈북단체장님께서 답변부탁드립니다.
GT 투사   2015.02.15 23: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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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 장철봉씨는 탈북자사회가 인정하는 사람이였습니다.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 그렇게 가다니... 원래 쓸나무부터 찍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요. 이제 탈북자사회에서 누가 장철봉씨처럼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짧은 인생 굵게 살다갈 사람이 되겠는지요?
죄를 지었으니 처벌을 받으라고 고소까지 당한 처지를 비관하며 홀로 운명의 최후순간을 기다렸다니 더더욱 가슴 아픕니다.
부디 하늘 나라에서 고인이 생전에 그리던 탈북자권리를 찾는 날이 오는것을 지켜보오소... 님이 바라던 그날이 반드시 이루어질것입니다.
GT 멋진 평양…   2015.03.09 22: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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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나본 최고의 평양 놀새였습니다~
저는 전라도 사람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17년전 장철봉씨를 알게 되었고, 북에서 내려온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뜨리는 파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재치와 유머가 넘치고, 멋도 알았지요~ 사람과의 어울림도 알았지요~
참 재밌는 사람이었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어요.  북한의 공산체제에선 숨막혀 살 수 없는 스타일이라고...남한으로 잘 내려왔다고...
이쁜 아내를 맞이해 결혼도 했고, 효민이도 낳았고...걱정없이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줄 알았지요...
연락없이 지낸지 10년도 더 지났는데...얼마전 문자가 날아와...장례식 당일 점심때쯤이더라구요~
발인시간 코앞에 두고 연락 할 리 없다고... 이 친구 스타일로 보아 안부삼아 장난을 과하게 한 줄 알았지요...ㅠㅠ
장난이라 하더라도 그 때 가볼걸...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ㅠㅠ
장철봉...이 친구 정말 행복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멋지게 한 판 놀고 갔어야 하는데...평양놀새가 이렇게 쉽사리 가버릴 줄이야...
안타깝고...안타깝고...안타깝습니다...
효민이는 아빠의 대범함, 불의와 타협을 모르는 정의로움, 모험심을 닮아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길 늘 기원하겠습니다...
장철봉씨의 마지막을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