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생활이 없는 북한 꽃제비, 자유롭게 담배피우는 꽃제비 소년 (자료사진) |
그런데 최근 남한에 정착한 23살 박진혁씨는 기차단속을 비롯한 각종 단속검열에도 무사히 빠질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런 특권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당 간부나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씨의 증언에서는 의외로 '꽃제비'라는 말이 나왔다.
남한사람들은 북한 '꽃제비'라고 하면 부모도 없고 집도 없이 빌어먹으며 걸식하는 불쌍한 아이들로 알고 있다. 북한도 초창기 꽃제비들을 보면 먹을 것도 쥐여 주고 입던 옷도 벗겨주던 주민들이 많았다. 지금은 ‘꽃제비’를 보는 주민들 시선이 종전과는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빌어먹던 그들이 지금은 물건이나 음식을 도적질하는 행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진혁씨는 "열차에서 ‘꽃제비는 보안원에게 단속되어도 거의 무사히 풀려난다. 험상한 옷에 씻지 못한 탓에 몸에서 악취가 난다. 혹 보안원들이 멈춰서는 역에 그들을 내려놔도 다음번 들어오는 열차를 또 타면 된다. 이렇게 공짜로 차를 갈아타고, 추운 계절에는 앞 지대(벌방지대)에서 살고, 더울 때는 북부지방(함경남북도, 양강도)으로 들어와 산다"고 증언했다.
이어 "열차에서 단속된 사람들은 보안원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머리를 숙이고 순간이라도 더듬거리면 보안원의 주먹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꽃제비는 사정이 다르다. 부모도 고향도 없이 떠돌아 다니다나니 당연히 통행증도 있을 수가 없다. 그냥 생떼를 쓰면 단속성원도 별 도리가 없다. 몇 마디 물어보다가 빨리 가라고 발로 엉덩이를 찰 뿐이다. 무시 당해도 시시콜콜 물음에 대답하기보다는 몇 배 낫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자 혜산출신 고영철씨는 "북한에는 어디가나 휘발유나 부속이 없어 서있는 화물차들이 많다. 대체로 가동하지 못하는 차들은 국산차이다. 58년도에 나온 가형58화물차와 갱생 차(반트럭 소형차)들이 대부분이다. 언제인가부터 중국에서 파동이나 고철을 사들이기 시작하자 고등학교 남자애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화물차부속을 뜯어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경비원이 순찰도 하고 차고를 지켜도 깜빡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차 부속을 뜯어간다. 솔직히 경비원이 차고를 지킨다기보다는 잠복해있는 아이들이 경비원의 거동을 지킨다고 해야 정답이다. 이런 현상이 사회적으로 급속이 늘어나자 북한정권은 학교마다 조직생활을 더 강화하고 도적행위를 하다 적발된 학생에 관한 처벌과 학부모들까지 대중 앞에 내세워 망신을 주는 제재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길 건너편에 위치한 도시건설사업소 차고에서 부속을 뜯다 경비원에게 적발되었던 일이 있었다. 그는 차 밑에 드러누워 부속을 뜯다보니 온 몸에 흙을 뒤집어 쓴 상태서 경비원에게 붙잡혔다. 화가 난 경비원이 회초리를 들고 어느 학교냐고 따지자 그는 '꽃제비'라고 답했다. 흙투성이로 변한 그는 누가 봐도 '꽃제비'같았다. 경비원도 더 의심하지 않고 다시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놔주었다. 만약 그가 학교나 사는 곳을 그대로 말했다면 비판서도 쓰고 많은 학생들 앞에서 망신도 당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꽃제비'들이 시장에서 물건이나 음식을 흠 쳐 먹어도 불쌍한 생각에 외면하며 지나간다. 괜히 붙들어놓고 머리를 쥐어박거나 욕을 하면 훗날 그 몇 배되는 복수를 당한다. 지금은 '꽃제비'들이 아파트옥상이나 쓰레기장에 둥지를 틀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 마음은 솔직히 불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 쫒아내지 못한다. 주민들은 '꽃제비'라는 말 대신 '소속 없는 부대'라는 용어를 쓴다. 그 만큼 '꽃제비'들은 어떤 조직에도 소속 돼 있지 않는 집단인 동시에 증명서나 통행증이 없이도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사람들은 매일과 같이 진행되는 정권의 강제적인 동원이나 행사에 참가해야 한다. 반면 '꽃제비'들은 소속이 없다보니 마음대로 다니고 유동한다. 한마디로 북한의 '꽃제비'는 생활적인 면에서는 동정의 대상이지만, 자유의 몸들이어서 온갖 정치행사에 강제적으로 동원되어야 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