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직업이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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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탈북한 평성 출신 김은혁 씨는 문건상 업무와 실제 업무가 달랐다고 증언했다. 문건상에는 전차운전공으로 근무한 것으로 명시됐지만, 이미 그 직장에는 더 이상의 운전공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 다른 업무를 담당했다고 전했다.

김은혁 씨는 "전기 사정이 좋지 않으면 생산도 하지 못하지만 우리 기업소는 전기가 잘 들어와서 생산이 멈추거나 하지는 않았다"면서 "기업소에서 가장 활발히 돌아가는 곳이 생산이었기 때문에 생산 업무를 담당하는 일에 다시 배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문건상 업무와 실제 업무가 왜 다르냐는 질문에 김은혁 씨는 "북한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신기한 현상이 아니다"라면서 친형도 같은 일을 겪었다고 전했다. 문건상 공무직장 선반공으로 등록이 되어있는 친형은 부업지(부업 경리를 하는 곳에 쓰는 땅)에 동원됐다고 했다.

"부업지에 나가면 풀뿌리를 들춰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그 밭을 다 갈아엎는 일을 한다"면서 "직장에 다니는 종업원들의 살림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데 옥수수, 콩 등을 심고 재배한다. 한 마디로 농사꾼이다. 직장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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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탈북한 혜산 출신 옥연주 씨도 "북한에서 직포공(천을 짜는 사람)으로 일했는데 실제로는 돌격대에 나간 기간이 더 길다"고 증언했다.

"북한에서는 누가 먼저 나가느냐의 차이일 뿐 모두 돌격대에 한 번씩은 다녀와야 한다. 1년간 직포공으로 근무하고 나니 노동과에서 돌격대로 배치하더라. 2년 동안 돌격대 생활을 했고 복귀하자마자 탈북했다."
 
결국 직포공 근무 기간보다 돌격대에서 보낸 기간이 두 배는 긴 상황이다. 옥연주 씨는 "탈북 후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서 어떤 일 했느냐'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무슨 대답을 할까 고민이 된다"면서 "직포공이라고 해야 할 지, 돌격대원이라고 해야 할 지…"라고 말했다.

"자재도 제대로 보장이 되지 않고 전기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까 기업소가 알아서 다른 곳으로 배치를 시키는 것"이라면서 "직장은 있지만 직업이 없는 상황이다. 뚜렷한 직업 없이 노동과의 배치를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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