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기다리는 북한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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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들에게 장마란 삶의 시름을 가져다주는 재앙과도 같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비만 오면 큰물이 지고 산 인근 세대들은 밤새 피난을 가느라 야단법석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주민들 처지도 마찬가지다. 장마철이면 시장으로 들어오는 골목이 흙탕으로 변해 오고가는 손님도 자연히 줄어든다.

청진 출신 탈북민 김 씨는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이면 출입문 곁에서 언제면 비가 멎을까 속 태우며 기다린다. 북한에 살 당시 음식장사를 했는데 음식을 팔지 못하면 보관할 곳이 없어 온 식구가 때를 에운다. 판매음식을 먹어버리면 다음날 굴릴 밑돈이 줄어들면서 한숨만 나왔다."고 증언했다.

"장마가 지면 전반적인 장사가 멈춘다. 비오면 물건 사러 오는 주민들도 뜸하고 장마로 인해 압록강이 불어나 중국 산 물건도 한동안 들어오지 않는다. 구매자는 적고 상품가격은 오르고 시장상인들은 장마가 멈추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민 온성출신 장 씨는 "탈북 전 도시변두리에 살았다. 우리 동네 주민들을 텃밭 농사와 축산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보통 한 세대에 돼지 2~4마리 정도 키웠는데 사료를 마련하기 위해 옥수수를 사서 밀주를 담근다. 술을 뽑고 나오는 건덩이는 돼지사료로 이용했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이면 돼지 굴에서 나는 악취가 마을을 진동한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옆집은 창고에 땅을 깊이 파고 철판으로 지붕을 얹고 나무판자로 돼지 굴을 크게 지었다. 한해에 돼지 두어 마리정도 넣고 키우는데 가을에는 보통 80kg이상이 된다. 봄이 되면 온 가족이 산으로 돌아다니며 능쟁이, 비듬, 을 비롯한 돼지 풀을 큰 포대에 하나씩 메고 어슬어슬 할 때면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도적이 성하니 돼지 굴(돼지를 키우려고 땅속 깊은 곳에 구멍을 파고 만든 움막) 보안장치는 그야말로 가정집보다 더 꼼꼼하다. 돼지 굴 문짝을 열면 손가락 뚜께의 철근으로 살창을 만들어 놓고 돼지가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자물쇠를 도끼로 까도 끄덕 안하게 주문하여 만들었다. 무더운 여름에 돼지 분비물 냄새와 주변에 모여드는 파리 떼 때문에 동네 원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이어 "북한은 수돗물 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먹을 물 길러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것이 하나의 풍습처럼 굳어졌다. 식용수도 길어 먹기 힘든데 돼지 굴 청소할 물은 생각지도 못한다. 돼지 굴 청소를 하는 날은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 안성맞춤이다."고 말했다.

또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면 온 동네가 도랑으로 흐르는 빗물을 푼다. 어르신부터 손자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돼지 굴 청소를 시작한다. 양동이로 퍼 올린 돼지 똥물을 도랑에 부으면 순간에 아래로 떠내려간다. 비에 온몸이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가 멎기 전에 끝내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비가 멎은 뒤 집집마다 큰일을 치른 집처럼 북적 거린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면서도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일단 청소를 말끔히 했으니 몇 달은 끄떡없이 지낼 수 있다는 안도감이다. 예전에는 돼지 오줌 똥물에 바닥이 꺼멓게 보였는데 지금 보니 한결 깨끗 해진게 눈에 뜨였다."고 부연했다.

그는 "할머님이 돼지의 등짝을 막대기로 긁어 주며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이것들이 우리집안이 제일 큰 재산이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명줄이라고 이야기 했다. 이번 장마 비에도 돼지 굴 청소하느라 온가족이 떨쳐나설 북한주민들의 모습을 짠 한 추억 속에 그려본다."고 말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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