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 뿔 ◁◀
해거름에 최참봉이 얼큰하게 취해서
뒷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대문 앞에 절름발이 거지 하나가
동냥 좀 줍쇼라며 가느다란
목소리를 겨우 뽑아내고 있었다.
다른 집으로 가봐라.
뒤에서 최참봉이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피골이 상접한 거지는 울상으로 최참봉을 올려다보며
나리 이틀을 굶었습니다요.
목숨 좀 살려주십시요라며 애걸했다.
다른 집으로 가라 하지 않았느냐!
최참봉의 목소리는 고함으로 변했다.
삐그덕 솟을대문이 열리며
최참봉의 집사와 청지기
머슴들이 주인의 고함소리에 놀라 우르르 몰려나왔다.
나리~
거지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최참봉이
절름발이 거지의 목발을 밟아 부러뜨려
도랑으로 집어던지고 바가지를 박살냈다.
당장 꺼지지 않으면 네놈의 성한 다리도 분질러 버리겠다.
그때 그곳을 지나가던 노스님이 최참봉을 가로막으며
절름발이 거지를 일으켜 세웠다.
거지를 부축한 노스님이
손을 털고 있는 최참봉을 빤히 쳐다보더니
쯧쯧쯧 재운은 넘쳐나는데 명운이 다됐구려라고 말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던 최참봉이 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섰다.
뭐라고?
4월 초나흘 쇠뿔에 받혀서 죽을 운세요.
여봐라 저 땡초의 주둥이를 짓이겨라.
청지기와 머슴들이 노스님을 엎어놓고 얼굴을 밟았다.
피투성이가 된 노스님이 대문 앞에서 혼절하자
최참봉과 수하들은 안으로 들어가고 대문은 쾅닫혔다.
아직도 분이 덜 풀린 최참봉은 씩씩거리며
술상을 차려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최참봉은 천석군 부자지만 탐욕은 끝이 없어
보릿고개에 장리쌀을 놓아 가을이면
가난한 사람들의 논과 밭을 빼앗고 소작농 부인을 겁탈하고
고리채로 남의 집 딸을 차지했다
열흘이 지나 3월 그믐이 되자
노스님의 말이 꺼림칙하게 떠올랐다.
집사를 불렀다.
최참봉의 엄명을 받은 집사는
온 동네 소를 가진 집을 돌아다니며 그날부터
소를 외양간에 가둬 소고삐를 단단히 매고 외양간 문을 잠그도록 일렀다.
어느 안전이라고 최참봉의 명을 거역할까.
최참봉 머슴들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외양간 문에 대못질까지 했다.
4월 초나흘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
대문을 굳게 잠그고 사랑방 문도 잠근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최참봉은 땡초의 헛소리에
이 난리를 친 자신이 싱거워졌다.
황소가 천정에서 떨어질 건가.
사랑방 문을 열고 문지방에 팔을 걸치고
비스듬히 누워 귀를 후볐다.
그때 한줄기 봄바람이 불어
문이 닫히며 최참봉의 팔꿈치를 쳤다.
귀이개가 깊이 박히며 귓속에서 선혈이 쏟아지고
꽥 소리 한번 못 질러 본 최참봉은 혀를 빼고 지옥 길에 올랐다.
그 귀이개는 쇠뿔로 만든 것이었다.....
***********
◆◇ 배풀며 살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