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허락하다
맞벌이에 시달리다 40 중반을 넘긴 줄 모르는 집사람과 나란히 팔다리에 침을 맞는다 하기야 바쁘게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세월 승용차도 5천 킬로 넘으면 오일을 교환하고 사람도 마흔이 넘으면 철이 들지 않던가 이젠 내 몸에도 침을 꽂아 잠자고 있는 내 몸의 치유 능력을 깨우고 싶은 것이다 간호사가 집사람의 침을 빼는 것을 보고 슬쩍 발동하는 장난기 보세요 이 사람 찔러야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이에요 내가 이런 사람과 20년을 넘게 살았다고 했더니 웃는 간호사 뒤로 여섯 번째 뺀 오른쪽 새끼발가락 사이에서 나오는 저 붉은 선혈 아! 그래 당신도 사람이었구나 애들도 남들의 두 배를 낳고 1인 3역을 해내던 강한 당신도 붉고 따뜻한 피를 소유한 사람이었구나 내 몸에 꽂힌 침을 몸으로 밀어내는데
여섯 구멍의 침 자리 자리마다 차례차례 미안한 눈물이 솟았다.
- 서봉교, 시 '침을 허락하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가족입니다. 감정도 없는, 늘 그래야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는 가족입니다. 그래서 불쑥 눈물을 짓게 만드는 가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