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102세,연세대명예교수)
아침 출근길 지하철 전동차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가는 두 종류의 계단이 있었다.
한쪽 계단에는 긴 줄이 서 있었고 다른 쪽 계단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긴 줄은 에스컬레이터였고 짧은 줄은 콘크리트 계단이었다.
나는 긴 줄이 있는 곳에 섰다.
첫발을 계단에 들여놓는 순간,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을 서서 기다렸던 시간을 생각하니 슬며시 화가 났다.
우리들은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를 보면 불만을 터뜨린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에스컬레이터에 대해서는
기뻐하고 고마워해야 않는가? 또 늦게 온 버스에 화를 낸다면 정시에
도착한 운전기사에게는 고마움을 표해야 마땅하다.
버스와 엘리베이터는 정상 운행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교통시설은 당연히 정상적으로 운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누군가는 땀을 흘려야 한다.
영국의 저술가 콜린 윌슨은 인간의 모순적인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우울해지고,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면서 태양이 구름에 가려 있지 않을 때는
아무 관심도 갖지 않고, 길거리에 넘어지지 않아도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에스컬레이터나 버스의 경우처럼 자신의 기대에 조금만 벗어나도
불평하지만 기대에 부응한 일에는 기뻐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기쁜 일에 기뻐할 줄 모른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는 “가시에 손가락이 찔렸다면
그 가시가 눈을 찌르지 않았음을 감사하라.”고 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할 일’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언제나 두 종류의 계단이 있다.
하나는 ‘감사의 계단’이고 다른 하나는 ‘불평의 계단’이다
한쪽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고 다른 쪽은 불행으로 인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