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차례나 성적 행위를 거부한 피해자의 음성 녹음파일이 증거로 제출됐음에도 1·2심에서 모두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된 ‘동의 없는 성폭력’ 사건의 재판소원 청구에 대해, 6월 9일 헌법재판소가 본안 심사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강간죄의 폭행·협박 요건, 그리고 그 폭행·협박의 기준을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라고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이다.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공동대책위원회〉는 헌법재판소에 “강간 통념에 기초한 최협의설이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을 가로막는 법리임을 적시”하고 “강간죄의 폭행·협박 구성요건의 폐기를 재판소원 결정으로 반드시 확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권리’이지 ‘저항할 의무’가 아니다
그에 앞서 5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낡은 성폭력 형사법 체계의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하는 공론의 장이 열렸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가 주관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국회토론회에서 참여자들은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 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를 주제로 논의하였다.
미국 샘포드대학교 컴벌랜드 로스쿨 라모나 알빈(Ramona C. Albin) 교수가 “‘동의’ 기반의 미국 성폭력 관련 법률”에 관해 설명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이 “동의 없는 성폭력, 한국의 상황과 형법에 대한 과제”를 짚었다. 이창환 서울가정법원 판사, 소은영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전다운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신지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가해자의 물리적 폭력이나 피해자의 저항 여부가 아닌, 자유롭고 명백한 ‘동의’ 여부가 성폭력 판단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형법 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과, 이 요건마저도 가장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통계를 통해 현행법이 현실의 성폭력 피해자를 얼마나 배제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혜정 소장에 따르면, 2019년 1월~3월 강간 및 유사강간 상담통계(66개 상담소 1,030사례) 분석 결과,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 발생한 강간이 71.4%였다. 또 2022년 한 해의 강간, 유사강간, 준강간 상담통계(119개 상담소 4,765사례) 분석 결과에선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강간 상담이 62.5%였다.
한편, 2022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안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성추행 피해를 겪은 상황을 복수응답으로 물었을 때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7%, 7.1%에 그쳤고, ‘가해자의 속임수’가 34.9%로 가장 높았다. ‘갑자기’ 26.6%, 강요에 의해 18.7%, 가해자가 자신의 지위(권한·위력)를 이용해서가 16.2%였다.
김 소장은 “202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강간 상담 218건 중, 폭행이나 협박이 전혀 없었던 경우가 70.2%에 달했다. 반면, 현재 법원 판례상 강간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최협의의 폭행·협박’ 사례는 단 7.3%에 불과했다.”며 법과 현실의 극심한 괴리를 밝혔다. 즉, “현행법 체계 아래서는 약 90% 이상의 성폭력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그것은 성폭력이 아니다’라며 법적 구제를 거부당하는 부작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다운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는 1995년 형법 개정으로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이 ‘정조’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피해자의 물리적 저항을 묻는 법원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피해자의 ‘저항할 의무’가 아니라 행사하지 않는 순간에도 보장받아야 할 본연의 ‘권리’라는 것”이다.
전다운 변호사는 “최협의설은 범죄의 초점을 가해자의 행위가 아닌 피해자의 태도로 옮겨놓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피해자에게 극한의 저항을 증명하도록 강요하고, 이렇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성범죄에 대한 전형적인 피해자다움, 강간 통념을 강화하는 원천이 되어 왔다. 더불어 억울한 죄책감과 2차 가해를 제도화하고 있다.”
“동의 없으면 강간” 글로벌 스탠다드
라모나 알빈 법학교수는 “과거 미국 역시 영국의 법을 기초로 피해자의 ‘극한의 저항’을 요구하는 유형력(물리적 힘) 중심의 모델을 따랐으나, 이는 현실에서 네 가지의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첫째,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오류”다. 이는 “범죄의 쟁점을 피고인(가해자)의 행위가 아닌, 피해자가 얼마나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저항했는지 여부로 옮겨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부적절한 기준”이다. “현저한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대다수의 강간 사건을 법의 보호망에서 배제하며, 제대로 된 적용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셋째, “피해자의 얼어붙는 반응의 외면”이다. “강간 및 성폭행을 당할 때 극도의 두려움으로 몸이 굳어 저항할 수 없는 ‘긴장성 부동화’ 반응을 보이는 대다수의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넷째, “수면 및 약물 상태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피해자가 수면 중이거나 알코올, 약물의 영향으로 저항할 수 없었던 사건에 대해 유형력 법률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라모나 알빈 교수는 이러한 결함이 드러남과 더불어 “성폭력의 본질은 성적 자율성에 대한 침해”라는 인식이 부각됨에 따라, 성폭력의 핵심 요소가 “동의(적극적 합의)가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알빈 교수는 미국 강간죄 법률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했다. 미국은 주마다 각기 다른 법을 가지고 있으나, 1970년대부터 위스콘신주, 버몬트주 등을 시작으로 다수의 주가 피해자의 ‘적극적 합의’(Affirmative Consent)가 있었는가를 기준으로 법을 개정해 왔다. 특히 2024년 메릴랜드주는 2급강간 요건에서 유형력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고, 당사자의 명확하고 자발적인 합의를 ‘동의’로 규정했다.
일각에서는 강간죄를 ‘동의’ 기준으로 개정하면 어느 행위까지가 범죄인지 예측하기 어렵고, 합의한 성행위에 대해 이후 말을 바꿔 고소를 하는 등 무고가 늘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지만, 알빈 교수는 50년의 판례가 축적된 실증적 결과를 바탕으로 반박했다.

먼저 “범죄의 기준이 불분명해지는 게 아니라, ‘동의 없는 성관계가 강간’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동의에 대한 기준이 명시되므로, 평범한 성관계가 부당하게 처벌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수면이나 음주 등 모호한 ‘회색지대(Grey-Zone)’ 사건도 법원이 원칙에 따라 성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만이 아니다. 김혜정 소장은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반대하는 측에서 주로 인용하던 일본과 프랑스조차 최근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형법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2023년 형법 개정을 통해 기존의 ‘강제성교 등 죄’를 ‘부동의성교 등 죄’로 바꾸었다. 또한 동의하지 않는 의사를 형성하고 표명하고 완수하기 곤란하게 만드는 8가지 구체적 사유(폭행·협박, 알코올·약물 섭취, 지위 이용 등)도 명시했다.
프랑스 역시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수십 명의 남성을 불러들여 성폭행하게 한 사건을 계기로, 2025년 피해자의 자유롭고 명확한 동의가 부재한 성적 행위를 강간으로 처벌하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김혜정 소장은 “프랑스 의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동의한 것’으로 치부하는 기존의 ‘강간 문화’에 맞서, 자유롭고 명확한 정보에 기반한 동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흔들릴 것…우려는 ‘사실이 아니다’
동의 모델을 도입하면 입증이 어려워지고 재판 실무에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서도, 법조계 전문가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창환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법원이 알지 못했던 낯선 기준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성범죄 재판에서는 이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동의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창환 판사는 “카메라등이용촬영죄나 스토킹범죄 등 다른 법률에서도 이미 ‘의사에 반하여’라는 구성 요건을 무리 없이 적용하고 있으므로, 강간죄 요건이 동의로 전환되더라도 입증 책임의 원칙(무죄 추정의 원칙)은 그대로 유지되어 법원의 심리에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빈 교수 역시 “입증 책임이 피고인에게 전가된다는 우려”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동의 기준으로 법을 바꾸더라도 입증 책임은 피고인이 아닌 국가(검찰)”에게 있으며,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검사가 ‘동의 부재’를 포함한 모든 구성 요건을 입증해야 하므로, 입증 책임이 피고인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성적 착취에 ‘동의’한 것인가?

한편, 신지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동의’ 기준 논의를 성매매 산업과 구조적 불평등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돈이 지불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의’에 의한 거래로 간주해 성적 접근권을 무한정 허용하는 사회적 시선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를 ‘페이 강간(paid rape)’이라는 단어로 꼬집었다. “성매매나 포르노산업 현장의 여성들은 심각한 폭력과 억압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단지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들의 권리 침해는 가볍게 취급 당한다”는 것.
신지영 활동가는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에서 “지인의 평범한 얼굴이 합성된 것은 ‘지인 능욕 피해’로 분노하면서도, 그 합성의 토대가 된 포르노그래피 속 여성의 몸이 어떻게 착취되었는지는 질문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 또한 지적했다.
그리고 “여성이 ‘거부’하기 어려운 빈곤과 경제적 압박, 위력의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체념적 순응까지도 ‘동의’로 해석하는 사회는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동의를 정의해왔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비동의 강간죄 논의는 “개인의 좁은 선택 여부를 넘어, 어떤 조건 속에서 개인이 평등한 주체로 설 수 있는지를 묻는 사회적 전환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소은영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헌법적 관점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의미가 더 폭넓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권리”라는 협소한 성행위 국면에만 한정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은영 연구관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권리는 사적 영역에서의 내밀성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성적 자율성과 자유라는 측면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동의 강간죄’로 개정된 우리 사회의 미래는
토론회에서 자신을 “생존자”라 밝힌 한 참여자는 “성폭력이 발생한 현장이 과연 동의를 구할 만큼 여유로운가, 사실 얼마나 급박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명시적 동의가 없는 행위는 철저한 폭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자들은 이러한 폭력과 침해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피해자를 구제할 최후의 보루인 국가 형법이 과거의 ‘강간 문화’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며, 22대 국회와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또한 비동의 강간죄(동의 모델) 도입은 감옥에 보내는 가해자의 숫자를 늘리려는 형벌권 확장의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상호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폭력’이라는 상식을 법과 사회의 기준으로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형법이 개정된다면 우리 삶에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김혜정 소장은 다음과 같은 변화에 대해 전망했다.
“성적 행동 전에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고, 모든 사람을 자기 의사를 가진 동등하고 평등한 성적 존재로 존중하는 문화가 일상 곳곳에 교육되고 자리잡게 된다. 피해자에게 ‘왜 더 세게 밀쳐내지 않았느냐’, ‘왜 끝까지 소리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던 2차 가해의 법정은 사라질 것이며, 사법절차는 피해자에게 억울한 죄책감이 아닌 진정한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