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으로 가고싶은 북한병사 (자료사진) |
그런데 최근 남한에 정착한 제대군인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 군인들은 13년이라는 긴 복무기간 고향으로 가는 휴가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휴가를 달가워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2012년 7월 남한에 정착한 김명철(32)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군인들이 어쩌다 얻게 되는 행운 같은 휴가기회를 마다하는 원인은 휴가로 인해 드는 경제적인 부담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실 부모님의 안쓰러운 모습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 군인들이 휴가를 받는 경우는 여러 가지다. 그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휴가가 후방물자구입과 군관들의 사적인 부탁이다. 예를 들면 중대장이나 보위지도원 소대장이 집안의 대소사로 필요한 물자구입차원이다. 돈을 부탁하면 훗날 문제가 제기되어도 시끄러 울 수 있다. 때문에 간부들은 농마(전분), 꿀, 사탕가루, 고사리 등 값어치가 나가는 농산물을 요구한다.
실제로 그들이 요구하는 농산물은 농촌에서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러다 보니 휴가 받은 군인들은 부모님을 만난다는 기쁨에 겨워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시름을 어깨에 쥐고 고향으로 간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을 반갑게 맞이한 것도 한 순간, 자식이 메고 온 시름덩이를 덜어줘야 할 경제적 부담 때문에 부모들은 여기저기서 돈을 꾼다.
이런 현상이 북한군부대에서 하나의 규정처럼 굳어지다 보니 간부가 휴가를 가고 싶은 사람은 대열 앞에 나서라도 명령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도리어 휴가를 자주 가는 군인을 가리켜 '철없는 아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또한 휴가 온 자식 때문에 분주히 돌아가는 부모들을 보며 고향사람들은 '부모 귀한 줄 모르는 불효자식'이라고 욕한다.
또 다른 탈북자 양강도 삼지연군 출신 김현옥씨는 "군대가 아들이 5년 만에 백두산 답사차로 온다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아들을 본다는 반가움에 온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며칠 후 아들이 군관과 함께 고향집에 들어섰다. 식사가 끝나자 군관은 아들을 보고 한 주일 집에서 부모님들과 회포도 풀고 푹 쉬라고 하면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군관들이 나가자 아들이 얼굴에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왜 그러냐고 묻자 아들이 왼쪽 군복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펴서 들었다. 거기에는 들쭉단묵50통, 들쭉술 20리터, 담배10보루(1보루에 10갑)라고 적혀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갑자기 이 많은 것을 무슨 힘으로 구할지 막막했다. 그렇다고 부모 얼굴 뵈러 온 아들을 탓할 수도 없다. 시장에 가서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수중에 돈으로는 어림도 없다. 아들이 돌아 갈 날은 며칠 남지 않았는데 돈을 구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빈손으로 아들을 보낼 수 는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아들이 간부들로부터 받아야 할 미움과 학대를 눈뜨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고 그때 안타깝던 상황을 이야기 했다.
이어 "발이 닳도록 뛰어서 군관이 올 날짜까지 물건을 구하느라 정신없이 다녔다. 답사 온 아들 부모님들이 자기 땜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는 군복무가 끝날 때까지 집에 오지 않겠다고 울먹였다. 결국 부모 얼굴 한번 보려고 온 길이 부모 등을 휘게 만든 불효의 길이 된 것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그리운 고향집을 몇 년 만에 찾아 온 아들을 불효자로 만드는 장본인은 북한정권이다. 13년이란 긴 세월을 땀 내나는 군복에 배고픔을 감수하며 힘들게 버티는 군인들에게 부담 없는 휴가 정도는 보장해주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어쩌다 차려지는 휴가마저도 자신들이 이익에 이용하는 군부 상층들이 존재하는 한 당당하게 집으로 가려는 군인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강조했다.